광역단체장에서 ‘9 대 8’, 기초단체장에서 ‘80 대 117’의 지방선거 결과를 야당의 승리라고 매길 수 없다. 새정치연합 스스로도 선뜻 그렇게 말할 수 없기에 ‘절반의 승리’ ‘지고도 이긴 선거’ 등의 복잡한 수사를 동원하는 것일 게다. “선거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는 안철수·김한길 공동대표의 일성도 마찬가지다.
‘여당의 무덤’이란 공식이 통할 정도로 지방선거에서는 여권 견제론이 강력히 작동한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무능 정부 심판론이 더해졌다. 선거 결과는 그러나 심판·견제보다는 여당인 새누리당이 외려 선방한 쪽으로 나왔다. 새정치연합은 세월호 여파 속에서도 수도권에서 경기와 인천을 새누리당에 내줬다. 안산 단원고가 자리잡고 있어 세월호의 강한 영향권에 있는 경기에서도 패함으로써 ‘세월호 심판론’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서울에서의 압승을 내세울 수 있겠지만, 그건 당력보다는 박원순 후보의 개인 역량에 힘입은 바 크다. 새정치연합이 시·도지사 9곳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건 세월호 참사로 선거의 판 자체가 흔들린 결과이다. 새정치연합의 실력으로 쌓은 게 아니라는 얘기다. 그나마 ‘패배하지 않았다’는 성적표를 쥘 수 있었던 것은 세월호 참사의 반사이익에 가깝다.
새정치연합은 ‘세월호 심판론’을 내걸었으나 분노한 민심조차 대변하지 못했다. 대안 세력으로서의 능력과 신뢰감을 시민들에게 심어주지 못했다. ‘세월호 심판론’이 선거를 통해 정치적 심판으로 귀결되지 않은 것은 야당의 무기력 때문이다. 새누리당이 ‘박근혜 마케팅’으로 선거 본질을 호도하는 데도 새정치연합은 속절없이 휘둘렸다. 안철수 대표는 애초 잘못된 전략공천으로 신임투표가 돼버린 광주 선거에 발이 묶여 정작 ‘세월호 심판’의 마당인 수도권을 방치하다시피 했다. 지방선거 국면에서 민낯이 드러난 야당 리더십의 실체다.
6·4 지방선거의 결과는 제1야당인 새정치연합이 대안 세력으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음을 확인시켰다. 그러기에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정부의 무능·부실을 견제하고 심판하려는 표심조차 흡수해내지 못했다. 전국적인 진보교육감 선출 결과가 새정치연합 지지로 연결되지 않은 이유를 돌아봐야 한다. 새정치연합은 다시 혁신과 변화를 다짐하고 있다. 혁신을 위해선 야당에도 경고와 분발의 의미가 담긴 ‘선거 민심’에 대한 성찰이 선행되어야 한다. ‘9 대 8’의 숫자놀음에 빠져 ‘지고도 이긴 선거’에 함몰하면 더 큰 선거 패배를 예비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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