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11일 수요일

경향_[사설]유병언 잡는 데 ‘국민총동원령’이라니

검찰이 어제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의 본산인 경기 안성 금수원을 다시 수색했다. 지난달 21일 금수원에 처음 진입한 이후 3주일 만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제 국무회의에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검거 실패를 강도 높게 질책하자 서둘러 재진입을 결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유 전 회장은커녕 그의 도피를 돕는 것으로 알려진 두 여성의 신병조차 확보하지 못했다. ‘정권 봐주기’에는 그토록 유능하던 검찰이 유병언 수사에선 왜 이렇게 무능한가.

우리는 검찰이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고 본다. 유병언 수사는 원칙도 전략도 없이 ‘무조건 잡고 보자’는 식으로 시작됐다. 김진태 검찰총장은 세월호 침몰사고가 발생한 지 나흘 만에 유 전 회장 일가에 대한 전방위적 수사를 인천지검에 지시했다. 김 총장이 줄곧 강조해온 ‘환부만 도려내는 외과수술식 수사’라는 원칙과 거리가 먼 지시였다. 정부로 향하는 화살을 돌리기 위한 희생양 찾기라는 비판은 당연했다. 내사조차 거치지 않고 시작된 기획수사가 성공적일 리 만무하다. 검찰은 측근들을 줄줄이 잡아들였으나 정작 유 전 회장과 장남 대균씨의 소재를 파악하는 데는 실패했다. “검거할 때까지 퇴근도 않겠다”며 결의를 과시했지만 연이은 ‘뒷북 수색’으로 망신살만 뻗쳤다. 유 전 회장 일가는 검경을 비웃듯 도주극을 이어가고 있다.

대통령의 질책이 계속되자 정부 부처들이 ‘유병언 검거 총력전’에 돌입했다고 한다. 합동참모본부는 유 전 회장이 밀항할 가능성에 대비해 감시·경계 태세를 강화했고, 안전행정부는 내일 임시 반상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유 전 회장 검거의 필요성에 동의하지만, 정부의 대응에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민간인을 체포하기 위해 군 병력을 동원하는 일이 법리적으로 문제 없는 것인가. 다수의 언론매체를 통해 유 전 회장 얼굴이 널리 알려진 터에 반상회까지 열어가며 수배전단을 배포할 필요가 있는가.

세월호 참사의 발생 과정은 단순하지 않다. 다양한 원인이 복잡하게 얽혀있고 그 단계마다 책임져야 할 행위자도 한둘이 아니다. 유병언 일가에 대한 수사는 전체 수사의 한 갈래일 뿐이다. 이준석 선장과 유 전 회장이 책임질 몫이 있듯 정부 역시 책임질 몫이 있다. 유 전 회장 체포에 국민을 총동원하는 듯한 정부 대응은 그 의도가 의심스럽다. 검경은 조속히 유 전 회장을 검거하고, 정부는 진상규명 및 피해자와 가족을 보듬는 일에 집중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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