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8일 일요일

경향_[사설]지방선거의 진짜 패자는 지방자치다

6·4 지방선거가 끝난 지 닷새가 지났지만 선거에 관한 논의는 여전히 중앙정치 관심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 여야 정당이 어떤 성적을 냈는지, 국정 개혁 방향은 어떨지 평가와 전망이 한창이다. 그런 쟁점들이 향후 국정의 향방을 좌우하는 중요한 관심사인 것은 맞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박근혜 정권 심판’ 여부만을 결정짓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지방선거는 말 그대로 지방에 사는 시민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삶을 개선할 것인지를 두고 토론하고 선택하는 장이다. 

그런데 선거 과정에서나 선거 이후 ‘지방자치’라는 말을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중앙당은 ‘대통령의 눈물을 닦아달라’ ‘대통령의 무능을 심판하자’고 나섰다. 후보자 역시 중앙 정치에서 누가 영향력이 있는지, 중앙정부로부터 얼마나 많은 지원을 얻어낼지를 두고 경쟁했다. 모두 지방자치와는 무관한 풍경들이다. 지방자치라면 해당 지역 시민들이 세금을 내고, 그 세금을 재원으로 어떤 과제를 우선 추진할지 토론하고 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조건에서는 지방정부가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을 함부로 추진하지 못한다. “내 세금을 왜 그런 데 낭비하느냐”고 따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세금이 아니라 남의 돈, 즉 중앙정부 예산을 쓰는 것이라면 막을 이유가 없다. 지방정부가 무분별한 대규모 사업·국제행사를 하고 큰 빚을 지는 일이 반복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는 한마디로 ‘2할 자치’ 때문이다. 지방정부의 국가사무 대 지방사무, 국세 대 지방세의 비율이 8 대 2이다. 중앙정부가 지방 사업을 결정하고 돈도 대주는 것이다. 지역 시민들이 세금을 내고 그 범위 안에서 스스로 결정하는 구조가 아니라는 뜻이다. 중앙정치가 결정권을 쥐고 있으면 지방정치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제대로 된 공약이 나올 리도 없다. 어차피 지방정부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고, 지방 살림이 공약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는 걸 아는 시민들 역시 공약을 후보자 선택의 근거로 삼지 않기 때문이다. 이게 지방자치 20년의 현실이다. 

문제는 이처럼 자치 아닌, 탁치(託治)가 20년간 지속되고 있는데도 아무런 사회적 관심이 없고, 바로잡으려는 노력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앙정부가 지방정부 통제를 기득권으로 여기고 있는 한 자치는 사치스러운 구호로만 남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중앙 정치세력이 선거 한번 더 치르기 위한 핑계거리로 계속 동원될 것이다. 과감한 지방 분권과 권한 이양, 더 이상 늦춰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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