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8일 일요일

경향_[사설]‘뻥튀기 연비’ 조사결과 뭉개고 있는 이유 뭔가

연비는 차를 고를 때 중요한 판단 기준의 하나다. 연비가 좋고 나쁨에 따라 차량 유지비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간 국내 자동차 업체의 연비 표시가 과장됐다는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실제 현대자동차는 미국에서 연비 부풀리기가 적발돼 수천억원의 손해배상 비용을 지불했다. 국내에서도 현대차의 싼타페와 쌍용차의 코란도가 연비를 허위로 표기했다는 의혹에 휘말렸다. 하지만 정부는 2차례에 걸쳐 연비를 측정하고도 그 결과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정부가 업체 로비에 휘말려 소비자의 알 권리를 무시하고 있는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

싼타페와 코란도의 연비 측정은 이번이 2번째다. 지난해 의혹이 제기된 뒤 국토부·산업부가 실측을 했지만 결과가 달리 나왔다. 국토부 조사에서는 이들 차량의 연비 표시가 허용 오차범위(5%)를 초과했지만 산업부의 것에서는 오차범위 이내로 나왔다. 양 기관은 동일한 조건에서 올해 재조사를 실시했다. 하지만 조사가 끝난 지 3주가 지났지만 2차 조사결과를 내놓지 않고 있다. 무슨 꿍꿍이인지 모르겠지만 납득할 수 없는 노릇이다. 연비 과장이 들통 나면 과태료 및 형사고발은 물론 소비자들의 집단 손배소가 불가피한 사안이다.

자동차 연비는 정부의 공신력이 걸린 중대한 문제다. 자동차 업체야 차를 팔기 위해 연비를 과장하고 싶은 유혹이 있겠지만 이를 걸러내 소비자 피해를 막는 것은 정부가 할 일이다. 정부 기관 간에 연비 실측 결과가 엇갈리는 것은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연비 측정은 국제적으로 공인된 검사 방법과 기준이 마련돼 있다. 누가 검사했느냐에 따라 검사결과가 달라질 이유도 없다. 규정대로 했는데도 기관마다 검사결과가 다르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다. 국가 공인 수치가 엉터리라면 소비자들은 뭘 믿고 차를 살 수 있겠는가.

연비 부풀리기는 소비자 기만행위이자 명백한 실정법 위반이다. 정부는 업체의 자체 검사결과만 믿고 연비 과장을 묵인해왔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국산차 소비자는 봉’이라는 자조 섞인 푸념이 빈말이 아니다. 과거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정부는 그간의 연비 조사결과를 즉각 공개해야 한다. 검사결과에 차이가 있다면 전문가 검증을 거쳐 문제가 있는 기관에는 응당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차제에 국토부와 산업부로 나뉘어 있는 공인연비 측정기관을 단일화할 필요가 있다. 양 기관의 밥 그릇 싸움에 국가 공신력이 흔들려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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