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 국무총리 지명자가 어제 사퇴했다. 문 지명자는 “지금 시점에서 사퇴하는 게 박근혜 대통령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판단했다”며 총리 지명 14일 만에 물러났다. 정치·이념적 편향과 ‘친일 사관’ 논란 등에도 버티기로 일관하던 문 지명자는 해외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박 대통령이 임명동의안 재가를 계속 미루자 결국 사퇴밖에 달리 길이 없었을 터이다. 그가 사퇴 기자회견에서도 비판 여론에 강한 불만을 토로하며 자기변호만 늘어놓은 걸 보면, ‘자진사퇴’라기보다는 사실상 청와대의 정치적 ‘지명 철회’로 볼 수 있다. 안대희 총리 후보자가 전관예우 문제로 6일 만에 사퇴한 데 이어 문 지명자마저 국회 문턱도 넘지 못했다. 출범 당시 김용준 총리 지명자까지 포함하면 1년 반도 안된 정부에서 총리 후보 낙마가 벌써 세 번째다. ‘인사 참극’이라 할 만하다.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정부의 총체적 문제점을 수술하는 등 국정 개조를 해가겠다는 박 대통령의 구상은 좌초 위기에 봉착했다.
총리 지명자가, 그것도 연달아 국회 청문회장에 서보지도 못한 채 낙마한 데는 청와대의 책임이 무겁다. 결국 청와대의 부실한 인사 추천과 검증 시스템 탓이기 때문이다. 기초적인 재산 형성 과정조차 검증하지 않아 ‘안대희 낙마’를 겪고도 전혀 교훈으로 삼지 못했던 셈이다. 언론인 출신인 문 지명자는 과거 칼럼과 강연 등이 기본 검증항목일 것이다. 청와대가 최소한의 검증이라도 했는지 의심스럽다. 특히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자기들만의 인사 기준과 검증 잣대를 들이대고 있으면, 결정적 흠결조차 사전에 걸러질 리가 만무하다. 그러니 제자들의 논문 표절과 연구비 가로채기 등 최악의 연구윤리 타락을 드러낸 김명수 교육부 장관 후보자도 검증대를 무사통과했을 것이다.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은 청와대 인사위원회가 맡는다. 두 차례나 총리 지명자가 낙마한 부실 검증의 총괄적 책임은 인사위원장인 김기춘 비서실장이 져야 마땅하다. 총체적 고장이 확인된 인사시스템을 고치지 않고, 책임자의 잘못을 엄중히 묻지 않는다면 ‘인사 실패’는 재현될 수밖에 없다.
‘인사 참사’의 최종 책임은 당연히 임명권자인 박 대통령에게 있다. 박 대통령 스스로 “분열된 나라를 통합과 화합으로 이끌어가겠다”며 행한 총리 인사라면서 극단적인 우편향 인물을 총리로 지명하는 편협된 ‘인사 코드’가 사태의 근인이다. 공적 라인을 배제한 채 몇몇 측근·비선과 인사를 하니 자꾸 민심과 괴리되고, 검증에 구멍이 숭숭 뚫리는 것이다. 폐쇄적인 인사스타일, 독선적인 국정운영의 기조를 바꾸지 않으면 불상사는 되풀이된다. 정부를 개조하기에 앞서 박 대통령이 먼저 바뀌어야 하는 이유다.
박 대통령은 이제 헌법적 가치와 국민 통합·소통에 적합한 새 총리를 물색해야 한다. 난맥의 국정을 수습하기 위해서도 국민의 신망을 받을 수 있는 인물을 찾아야 한다. ‘수첩’ 밖으로 나와서, ‘진영의 논리’에서 벗어나 폭넓은 인재 풀을 가동해야 가능하다. 또다시 인사 실패가 빚어지면 정권 자체가 돌이킬 수 없는 나락에 빠질 것이란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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