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22일 일요일

조선_[사설] 아베 정권, 한·일 관계 파탄 내려고 '고노 담화' 재검증했나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내각이 20일 일제(日帝)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내용의 '고노(河野) 담화'에 대해 재검증 결과를 발표했다. 아베 내각은 2월부터 총리실에 '담화 작성 과정 등에 관한 검토팀'을 만들어 1993년 8월 발표된 고노 담화 작성 과정에 대한 검증 작업을 해왔다. 다른 나라도 아닌 자기 나라 정부가 21년 전 발표한 담화를 따져보겠다고 나선 것 자체가 정상(正常) 국가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다.

아베 내각은 이번 보고서에서 "(고노 담화의) 내용이 타당한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결론지었다. 더 이상의 설명도 없는 딱 한 줄짜리 문장이었다. 그러나 아베 내각의 진짜 의도는 이 한 줄짜리 결론이 아니라 여기에 붙어 있는 21장짜리 '별첨 자료'에 들어있다. 보고서 겉 포장과 속 내용이 다른 것도 상식에 어긋난다.

별첨 보고서는 21년 전 고노 담화에 큰 생채기를 냈다. 일제의 위안부 강제 연행 여부에 대해 일본 정부는 1993년 담화 발표 직후 고노 장관의 기자회견을 통해 "그런 사실이 있다고 봐도 좋다"고 했다. 그러나 이번 보고서는 고노 장관이 강제성은 있지만 강제 동원은 없었다는 일본 정부 입장과 달리 임의적으로 말한 것이라고 밝혔다. 장관의 회견 내용을 이제 와서 부정하는 것이다. 또 1993년 고노 담화 발표 당시엔 일본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 증언을 들었다고 했지만, 이번 보고서는 "조사가 끝나기도 전에 고노 담화의 원안(原案)이 작성됐다"며 담화에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은 반영되지 않았다고 부정했다. 1990년대 말 일본이 마련한 기금에서 61명의 위안부 할머니들이 500만엔 상당의 보상을 받았고, 일부 할머니는 기금 대표가 일본 총리의 사죄 편지를 낭독하자 '소리 내어 울고, 기금 대표를 껴안고 계속 울었다'며 일본이 보상에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강조하는 대목도 나온다.

무엇보다 이번 보고서는 담화 발표를 전후해 한·일 양국 정부 간 외교 채널을 통해 오간 교섭 과정을 상세히 공개했다. 이 자료에는 한국 정부가 고노 담화의 핵심 내용들과 관련해 단어 하나하나에까지 일일이 간섭한 것처럼 되어 있다. 또 진상 규명과 후속 조치를 묶는 '패키지딜'이라는 표현까지 들어가 있어 마치 위안부 문제를 놓고 한국이 일본과 정치적 거래를 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고노 담화가 철저한 사실 확인을 거쳐 작성되지 않고 외교 협상에 따라 작성되었고 일본이 위안부 피해자 보상에 노력했다는 게 보고서의 취지다.

한국은 일제의 위안부 강제 동원으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던 당사국이다. 한국인 여성 피해자들은 1990년대 초까지 '성(性) 노예'로 끌려갔던 것에 대해 입을 다물었다. 공개하고 싶지 않은 치욕이었기 때문이다. 1964년 한·일 수교 협상에서 이 문제가 다뤄지지 않았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1991년 중반부터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이 쏟아졌고, 이듬해 초부터 시작된 주한 일본 대사관 앞 수요 집회는 23년째 계속되고 있다. 일본은 이 문제를 더 이상 덮어둘 수 없는 상황에서 고노 담화를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이뤄진 한·일 간 외교 접촉을 두고 무슨 흥정이 오간 것처럼 아베 내각은 왜곡했다. 아베 정권이 지금 와서 외교적 접촉을 거쳐 일본 정부가 어쩔 수 없이 고노 담화를 발표한 것처럼 보이려 한다면 일본의 외교적 독자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집권 전부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부인했고 고노 담화 수정을 여러 차례 공언했다. 아베를 떠받치는 일본 우익들은 고노 담화가 역사적 사실에 바탕한 것이 아니라 정치 협상의 결과물이라며 재검증을 줄기차게 주장해왔다. 2012년 12월 자신의 입으로 '담화 수정'이라는 말을 했던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이날 조사 결과 발표 후 "고노 담화를 수정하지 않는다는 일본 정부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가 지난 4월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말을 바꿨던 것과 똑같다.

아베 내각은 이번에 정직하지도, 당당하지도 못한 모습을 보였다. 담화를 계승하겠다는 뜻을 형식적으로 밝혀놓고서는 사실상 고노 담화를 격하(格下)시키는 첨부 자료를 공개하는 꼼수를 쓴 것이다. 한국 정부는 이날 외교부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통해 "담화의 신뢰성을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내용"이라고 했다. 그러나 아베 내각은 이번에 고노 담화만 훼손한 게 아니라 한·일 관계, 더 나아가 한·미·일 3각 안보협력의 틀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일본은 이번에 상대방의 동의를 얻어야 할 만한 내용도 공개했다. 발표 자료에 따르면 일본 측은 대화 과정을 일체 비밀에 부칠 것을 먼저 제안하고 한국 측이 이를 받아들였다. 또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미야자와 기이치 총리의 최종 재가가 있었으며, 특히 김 대통령이 일본 측의 최종안을 평가하고 "한국 정부는 (고노 담화) 문안이 좋다는 취지의 연락이 있었다"고 했다. 이것이 설령 사실이라고 해도 자기들 편의대로 취사선택한 내용을 일방적으로 공개한 것은 외교를 하지 말자는 얘기나 다름없다. 어디까지 사실인지도 알 수 없는 이런 내용을 들춰내는 나라를 어떻게 신뢰하고 앞으로 안보 문제 등에서 협력을 도모할 수 있겠는가.

아베 내각은 막판에 발표 수위를 놓고 고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의 반발과 미국의 공개 경고, 국제사회의 비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중재로 지난 3월부터 어렵게 시작된 한·미·일 안보 협력이 차질을 빚게 된다면 전적으로 아베 내각의 책임이다. 정부는 미국과 국제사회에 이번 보고서 내용의 문제점과 함께 이 점을 분명히 알려야 한다. 한·일 관계가 중대한 전환점에 이른 만큼 정부의 대응 역시 단기 대증(對症) 요법을 넘는 장기적·전략적 대처 방안을 찾아야 한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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