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베 신조 내각이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사죄한 1993년 8월 고노 담화를 무력화시키는 내용의 보고서를 어제 공개했다. 내각에 설치된 ‘고노 담화 작성 과정 등에 관한 검토팀’은 국회에 낸 보고서에서 고노 담화의 핵심인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흠집 내면서 담화를 한·일 간 외교적 타협의 산물로 격하시켰다. 전체 21페이지의 보고서 제목이 아예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한·일 간 논의 경위’였다. 1990년대 초 위안부 문제가 제기된 이래 한·일 간 막후 논의와 외교장관 회담 내용, 양국 정상 반응까지 세세히 소개하면서 위안부 문제를 과거사 문제가 아닌 정치적 문제로 변질시키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일본이 막후 논의 내용을 일방적 해석으로 공개함으로써 한·일 외교 당국 간 신뢰는 근간이 흔들리게 됐다.
보고서는 한·일 간 위안부 관련 논의가 92년 7월 가토 고이치 당시 관방장관이 위안소 설치, 모집, 운영에 일본 정부의 관여가 있었다는 내용을 발표할 때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듬해 고노 담화 작성이 양국 간 조정에 의해 이뤄졌다는 취지의 내용을 담았다. 보고서는 담화의 핵심인 위안부의 강제연행 부분, 즉 ‘감언, 강압에 의하는 등 총체적으로 본인들 의사에 반하여 모집됐다’는 것에 대해선 “일련의 조사 결과로 얻은 인식은 ‘강제연행’은 확인할 수 없었다는 것”이라고 못박았다.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본 정부 조사에서도 16명의 증언을 청취했으나, 이 직전에 이미 고노 담화의 일본 측 원안이 작성됐다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고노 담화가 외교적으로 절충된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는 셈이다.
보고서는 고노 담화의 문안을 둘러싼 한·일 간 논의에 대해선 ‘조정’이라는 단어를 써 가면서 상술했다. 위안소 설치와 위안부 모집 때의 일본군의 관여와 강제성이 쟁점이 됐고, 결국 발표 하루 전까지의 양국 간 교섭에 의해 문안 조정이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양국 간에 이런 조정이 있었음에도 한국 측은 “(담화) 발표 직전에 일본 측으로부터 팩스로 발표문을 받았다”는 취지로 언론 대책을 말했다는 부분까지 소개했다. 요컨대 고노 담화가 일본 정부의 자체 조사와 판단을 기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런 만큼 고노 담화는 껍데기만 남게 됐다. 전쟁과 무력행사 포기 등을 담고 있는 헌법의 평화 조항(9조)이 해석 변경으로 이름만 남은 것과 다를 바 없다. 아베 내각은 보고서 발표 직후 “고노 담화를 수정하지 않는다는 일본 정부의 입장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고노 담화를 무력화시켜 놓고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일이다. 누가 그 진정성을 믿겠는가.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부정하는 것은 인류의 보편적 인권에 대한 부정이자 또 다른 역사 도발이다.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 행보는 국제사회에서 고립과 역풍만 부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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