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22일 일요일

중앙_[사설] 쌀 시장 개방 미룰수록 손해다

정부가 어제 열린 ‘쌀 관세화 공청회’에서 쌀 시장 개방을 사실상 공식화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앞으로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쌀을 관세 폐지 양허 대상에서 제외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는 쌀 시장을 개방하되 FTA 협상 등을 통해 관세율이 낮아지지 않도록 해 외국산 쌀의 무차별 유입은 막겠다는 의미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쌀 개방을 늦출수록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며 “9월까지 세계무역기구(WTO)에 쌀 시장 개방을 통보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현재 쌀 시장 개방을 미루고 있는 나라는 한국과 필리핀뿐이다. 필리핀은 19일(현지시간) 쌀 시장 개방을 5년 더 미루기로 했다. 대신 의무수입량을 기존 35만t에서 2.3배인 80만5000t으로 대폭 늘리고, 관세율도 현행 40%에서 35%로 낮추며 희망하는 모든 나라에 쌀 수출쿼터를 제공하기로 했다. 정부 관계자는 “구체적 내용이 공개되진 않았지만 필리핀 정부가 쇠고기 등 육류 시장도 추가 개방하기로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쌀 시장 빗장을 5년 더 걸어두는 대가로 너무 많은 것을 내준 셈이다.

 필리핀 사례는 남의 일이 아니다. 한국의 유예기간은 올해 말로 끝난다. 20년간 쌀 시장 개방을 미룬 대가로 우리는 이미 막대한 비용을 치렀다. 1995년 5만1000t으로 출발한 의무수입량은 올해 40만8700t으로 늘었다. 그러느라 20년간 약 3조원의 비용이 들었다. 수입쌀 보관에만 지난해 약 200억원의 국민 세금을 썼다. 창고가 모자라 민간업체 냉장창고까지 빌려 쓰는 것도 안 돼 매년 수입쌀 5만~20만t을 주정용으로 ‘땡처리’하고 있다. ㎏당 900~1100원에 사온 쌀을 ㎏당 300원씩에 처분하고 있는 것이다. 또 개방을 미루려면 필리핀 수준으로만 협상한다 해도 5년 후엔 연간 94만t을 수입해야 한다. 국내 소비량의 약 20%다. 게다가 필리핀처럼 쌀을 막자고 쇠고기 시장을 내줄 수도 없는 것 아닌가.

 일본은 95년, 대만은 2003년에 쌀 시장을 열었지만 두 나라의 쌀 수입은 거의 늘지 않았다. 우리 쌀의 경쟁력도 높아졌고 국제 시세와의 격차도 2~3배 정도로 많이 좁혀졌다. 300~500%의 관세를 물리면 시장을 열지 못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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