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부품 시험성적서 위조 파문이 또 터졌다. 지난해 원전 비리 수사 과정에서 건설 중인 원전에 가짜 부품을 납품해온 업체가 무더기로 적발돼 홍역을 치른 바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노후화된 원전 부품을 교체하는 과정에서도 가짜 시험성적서가 동원된 것으로 드러났다. 안전이 생명인 원전이 이토록 무방비 상태에 노출돼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그간 원전 비리 척결을 외쳐온 정부는 뭘 했는가. 가짜 부품이 발붙일 수 없도록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산업부가 산하 6개 국가공인시험기관을 상대로 한 감사에서 시험성적서 위·변조 사례가 39건 적발됐다. 기업체가 공기업에 납품하기 위해 제출한 서류가 엉터리라는 얘기다. 이 중 7건은 원전의 수리 및 보수용이다. 고리 3·4호기의 노후화된 부품을 교체하면서 가짜 부품을 사용한 것이다. 제품 성능이 검증되지 않은 부품을 사용했으니 원전이 멀쩡할 리 있겠는가. 정부는 “원전을 정지시키지 않고도 교체할 수 있다”고 하지만 여름 성수기를 맞아 전력난이 가중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더 한심한 것은 국가공인기관의 작태다. 업체가 가짜 성적서를 제출해도 이를 제대로 검사한 뒤 걸러내는 게 그들의 임무다. 하지만 가짜 시험성적서는 아무런 검증 없이 무사 통과됐다. 더구나 시험 검사 와중에 서류를 조작하거나 형식적으로 검사한 뒤 인증 마크를 달아준 사례도 다수 적발됐다. 수수료만 받아 챙길 줄 알았지 자신의 본분을 망각한 것이다. 국가공인 품질인증 마크가 이토록 엉터리라면 뭘 믿을 수 있겠는가.
지난해 한전은 시험성적서 위조 파문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1만건 넘는 성적서 위·변조 사례가 적발돼 이를 교체하느라 원전 3기가 한꺼번에 멈춰 서면서 전력 대란 위기를 가까스로 넘긴 바 있다. 이런 값비싼 교훈을 치르고도 불과 6개월 만에 또 고질병이 도진 것은 뭘 말하는가. 원전 안전을 책임지겠다던 약속이 한낱 헛구호였던 셈이다. 지금이라도 원전 안전과 관련된 한전의 시스템을 전면 재점검해야 한다. 가짜 성적서를 낸 업체는 엄중한 사후 책임을 묻되 가짜 서류가 통용되지 않도록 검증장치를 한층 강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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