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22일 일요일

경향_[사설]경제 실세 말 한마디에 부동산 규제 꼬리 내리나

금융당국이 주택담보대출 규제 완화 검토에 나서겠다고 한다. 이명박 정부는 물론 박근혜 정부 1기 때도 견고했던 주택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 불가론이 최경환 부총리 내정자의 말 한마디에 방향을 바꾸려는 것 같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엊그제 국회에서 “금융안정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실물을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는지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최수현 금감원장도 “합리적 개선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금융정책 기능이 없는 금감원장 발언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규제 결정권을 갖고 있는 금융위원장마저 경제 실세의 한마디에 즉각 반응하는 것은 실소를 넘어 안쓰러움을 느끼게 한다. 더구나 그가 열흘 전까지 “LTV·DTI는 가계부채 차원의 금융정책 수단으로 금융소비자 보호와 금융기관 건전성 유지를 위한 핵심장치”라고 말해왔음을 떠올리면 더욱 씁쓸하다.

부동산 규제가 시장 활성화를 막는 대못이라는 완화론자의 주장에도 금융위가 불가 입장을 고수했던 것은 득보다 실이 크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국토교통부 등의 자료를 종합하면 주택 거래량과 가격은 과거 부동산시장 팽창 때와 달리 체감도는 낮지만 꾸준히 오르고 있다. 거품이 정상적으로 빠져가는 자기조정 과정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돈을 더 빌려줘 집을 사도록 유도하는 정책은 헛바퀴로 끝날 공산이 크다. 되레 가계빚만 더 늘릴 수 있다. 가계는 주택담보대출을 주택구입자금 용도 못지않게 생활자금·사업자금으로 써왔다. 이런 상황은 지금도 변함없다. 일각에서는 규제를 풀어 시장을 활성화시키면 소득이 늘고 그렇게 되면 부채상환능력도 좋아져 가계부채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얘기도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이다. 집값이 과거처럼 오를 것으로 여기는 사람은 정부 내에도 없다.

물론 어떤 정책도 영구불변한 것은 없다. 하지만 바꾸려 할 때는 합당한 논거가 있어야 한다. 신 위원장은 “금융안정이 많이 됐다”는 것을 앞세우고 있지만 이에 대한 구체적 논거는 없다. 진정 규제 완화가 절실하다면 실세가 말하기 전에 필요성을 설명하고 입장을 표명하면 될 일이다. 물론 여기에는 책임이 따라야 한다. 앞으로 출범할 2기 경제팀의 리더십과 일사불란함을 시비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그 일사불란함이 지시와 무조건적인 이행만으로 이뤄지는 것은 곤란하다. 이는 정책 실종일 뿐이다. 부동산 규제 완화 문제를 놓고 더 심도있는 논의가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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