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24일 화요일

조선_[사설] 문창극 파동이 남긴 것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지명(指名) 14일 만인 24일 자진사퇴했다. 문 후보자는 기자회견에서 "제가 총리 후보로 지명받은 후 이 나라는 더욱 극심한 대립과 분열 속으로 빠져들어갔다"며 "이런 상황은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인사청문회까지 가지 못해서 안타깝다"며 "앞으로는 잘못 알려진 사안들에 대해 청문회에서 소명 기회를 줘야 한다"고 했다.

총리 후보자의 사퇴는 14년 전 총리에 대한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된 이후 6번째이자 박근혜 정권 들어서만 1년 4개월 동안 벌써 세 번째다. 세 명 모두 청문회까지 가보지도 못했고, 그 중 문 후보자를 포함한 2명은 국회에 인사청문요청서조차 보내지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한 달여 만인 지난 5월 20일 대(對)국민 담화에서 "이번 사고는 오랫동안 쌓여온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끼리끼리 문화와 민관유착이라는 비정상의 관행이 얼마나 큰 재앙을 불러올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며 "관피아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국가 개조'와 적폐(積弊) 청산을 강조하며 정부 조직법 개정안까지 국회에 냈다.

국민은 그 일에 걸맞은 총리 후보자를 원했다. 강력한 추진력을 가진 사람, 전관예우를 받은 적이 없는 사람, 관피아의 고리와 관계없는 사람, 도덕적 하자가 적은 사람, 분열된 사회를 통합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사람들을 원했다. 인사 대상자의 폭을 넓히라는 주문도 보수·진보를 떠나 나왔다. 문 후보자가 지금 이 시기에 걸맞은 총리 후보였는지엔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국가 개조는 국민의 동의를 얻어도 쉽지 않은 일이다. 많은 반발로 인해 시간이 흐르면서 국민 지지가 흐트러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런 상황을 헤쳐 나갈 총리는 무엇보다 국민과 함께 갈 수 있어야 한다. 처음부터 국민 대다수가 잘 모르는 깜짝 인선을 할 여건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문 후보자만이 아니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후보자는 여러 편의 논문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다른 장관 후보자와 청와대 수석에 대해서도 논문 표절 의혹이 제기됐다. 어느 장관 후보자는 음주 측정을 거부하고 경찰과 승강이를 벌인 적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고, 다른 청와대 수석은 술자리에서 옆 사람을 맥주병으로 때린 적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런 내각과 청와대 비서실로 대통령이 국민에게 약속했던 개혁을 할 수 있겠느냐, 심지어 검증을 하기는 한 거냐 같은 얘기들이 나오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자초한 일이다. 청와대엔 인사 추천과 검증을 담당하는 인사위원회가 있다. 인사위는 총리 후보자 두 명이 청문회도 가보지 못하고 연속 낙마하는 초유의 상황을 초래했다. 언론이 인터넷과 공개 정보를 뒤져 하루, 이틀 만에 찾아내는 것을 찾지 못했거나 알고서도 그냥 넘어갔다. 그 인사위의 위원장이 김기춘 비서실장이다. 야권은 물론 여권에서도 김 실장 책임론이 나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지금 시중에선 정부가 민생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정부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런 상황을 초래한 원인을 찾아 시스템과 사람을 동시에 재정비하지 않으면 똑같은 일들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와는 별개로 이번에 문 후보자의 과거 교회 강연 내용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들도 그냥 넘길 순 없다. 너무나 심각한 우리 사회의 병증(病症)이 다시 한 번 드러났기 때문이다. KBS의 보도를 계기로 문 후보자는 '친일(親日) 반(反)민족'으로 몰렸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에서 누가 무슨 득을 보겠다고 친일·반민족의 편에 서겠는가. 문 후보가 강연에서 부정적이고 수치스러운 역사를 언급한 것은 그것을 딛고 긍정적이고 자랑스러운 역사로 이어졌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언론사엔 줄이고 압축해 보도할 수 있는 편집권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말하는 사람의 의도를 비틀고 왜곡하는 것까지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또 정파가 다르고 종교가 다르다고 마치 적(敵)을 공격하듯 함부로 매도하고 낙인(烙印)찍은 다음에 제 귀는 닫아버리는 풍토를 그대로 두고는 국가 개조는 공염불일 뿐이다.

정홍원 현 총리가 사의를 밝힌 지 두 달이 다 됐다. 그만큼 국정 공백이 장기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해서 인선을 서두르다가 또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인사의 실패를 되풀이해선 안된다. 박 대통령은 이번에 왜 총리를 바꾸겠다고 나섰는가를 잊지 말아야 한다. 도덕적 하자도 적고, 관피아 개혁을 밀어붙일 추진력도 갖추고 국민 통합에도 적임인 만능의 총리감을 찾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이번만큼은 자기 사람, 사적인 연(緣)에 얽매이지 않고 널리 사람을 구한다면 국민이 고개를 가로젓지는 않을 만한 인물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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