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홈쇼핑 납품 비리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 결과는 '갑(甲)'의 횡포와 비리가 얼마나 심각한지 여실히 보여준다. 회사 대표부터 말단 직원까지 납품 업체들을 등쳐 뒷돈을 챙긴 모습은 기업이 아니라 범죄 집단을 떠올리게 한다.
회사 대표라는 사람은 황금시간대 배정과 백화점 입점 편의를 봐주겠다며 납품 업체들로부터 1억3000여만원을 받았고, 회사 간부들로부터 매달 정기적인 상납금을 받기도 했다. 회사 간부들은 대표에게 상납할 돈을 마련하기 위해 회사 돈을 빼돌려 비자금을 만들었다. 비자금이 부족하면 개인 신용카드로 현금 서비스를 받거나 회사 돈을 미리 당겨 쓰고는 나중에 채워넣었다.
'윗물'이 이렇게 썩었으니 '아랫물'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어느 중간 간부는 전처(前妻)의 생활비까지 납품 업체에 떠넘겼다. 다른 직원은 아버지의 도박 빚을 해결해야 한다며 돈을 요구해 1억5000만원을 뜯어냈다. 상장(上場)이 예상되는 주식을 소개받아 투자했다가 손실이 나자 높은 가격에 주식 환매를 요구해 4000만원을 돌려받은 직원도 있다. 조폭들이 시장 상인들로부터 '보호비' 명목으로 돈을 갈취하는 수법을 빼닮았다.
TV 홈쇼핑 사업은 1995년 소비자들이 질 좋은 상품을 값싸고 편리하게 구입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6개 홈쇼핑 업체의 작년 매출액은 8조7800억원으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그러나 2012년 4개 홈쇼핑 업체 간부들이 무더기로 구속 기소되는 등 비리도 끊이지 않고 있다. 홈쇼핑 업체 모두가 상품 출시와 방송 시간 편성권을 무기로 납품 업체들에 절대 갑(甲)으로 군림하고 있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중소기업들은 2~3차례 홈쇼핑 방송으로 단번에 1년치 매출을 올릴 수도 있지만 황금시간대에 배정받지 못하면 오히려 미리 확보해둔 재고 물량을 처리하느라 고생을 해야 한다. 그래서 납품 업체들은 좋은 시간대에 방송을 타기 위해 필사적으로 로비에 매달린다.
관할 부처인 미래부는 홈쇼핑의 납품 비리에 대해 5년마다 이뤄지는 채널 재승인 심사에서 불이익을 주겠다고만 밝혔다. 이런 식의 미적지근한 대응으로는 홈쇼핑의 뇌물 체질을 뿌리 뽑기 어렵다. 납품 업체들이 홈쇼핑 임직원들에게 뇌물을 주고 나면 그 뇌물을 상품 가격에 전가(轉嫁)할 수밖에 없어 결국 피해는 소비자들에게 돌아간다. 국민으로부터 받은 방송 사업권을 악용해 약자(弱者)를 등치고 검은돈을 챙기는 기업은 보호할 가치가 없다. 정부는 법을 개정해 TV 홈쇼핑 업체의 뇌물 범죄는 즉각적인 영업정지나 채널 승인 취소로 엄벌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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