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0일 14시 화재대피 및 긴급차량 골든타임 확보를 위한 전국 훈련 실시’. 소방방재청은 20일 오전 9시를 기해 전국의 휴대전화 가입자에게 긴급 문자를 보냈다. 재난 대응 메시지를 받아 본 시민들은 잠시 어리둥절해했다. 이날의 394차 민방위 훈련은 평소와 다르게 진행됐다. 민방위 창설 이래 처음으로 전국 단위의 화재 대피 훈련을 벌인 것이다.
전국 공공기관은 물론 백화점·할인점·극장·터미널에서 안전지침에 따라 대피하는 훈련이 진행됐다. 구급차·소방차 등 긴급 차량에 길을 비켜주는 골든타임 확보 훈련도 전국 시·군·구별로 한 곳에서 실시간으로 벌어졌다. 전반적으로 공공기관의 호응도는 양호했다. 하지만 백화점·할인점 등 민간 영업 장소에서는 시민들이 대피 안내에 응하지 않는 모습이 자주 목격됐다. 골든타임 확보 훈련에서도 긴급차량의 사이렌을 무시하거나 긴급차량을 뒤따라 가는 얌체운전 사례가 있었다.
각국에서 민방위 훈련이 법제화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다. 화생방 무기와 장거리 미사일이 개발되면서 어느 나라든지 유사시에 모든 영토가 위험사정권에 들게 됐다. 피해 범위에서 군과 민간의 차이가 없는 시대가 됐다. 영국(1948년)과 미국(1951)에서 민방위법이 등장했으며, 우리도 1975년 민방위기본법을 제정해 적의 침공에 대비하는 비(非)군사훈련을 해왔다. 이번 훈련은 위기 대응의 범위를 확장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첨단·화학 무기뿐 아니라 인적·자연적 재난도 한 국가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세월호 참사라는 해상 사고가 일부 국정을 마비시키지 않았는가.
그동안 민방위 훈련은 적지 않은 비판을 받아왔다. 피부에 와닿지 않는 상황에서 건물 안에 가만히 있거나, 방송에서 사이렌을 듣는 정도였다. 효과는 별로 없으면서 귀찮게만 한다는 인식이 커져 왔다. 이번에 비상 상황의 범위가 확대되고 부분적으로 시민 참여 형태로 바뀐 것은 바람직하다. 이제 성공 여부는 새로운 형태의 훈련에 시민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하느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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