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총리 후보자는 지난 대선 때 박근혜 캠프의 정치쇄신특별위원장을 맡아 정치권의 특권 구조를 폐지하는 개혁안을 마련했다.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을 캠프에 영입하려는 박근혜 후보에게 반대의 뜻을 명확히 밝힌 직언파이기도 하다. 대선 승리의 날, 캠프에서 자기 방을 소리소문 없이 뺄 정도로 진퇴가 분명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대검 중수부장을 맡아 한나라당의 차떼기 대선자금을 파헤쳤고 대통령의 측근인 안희정 현 충남지사를 구속시켰다. 이런 강한 소신과 개혁 이미지는 그가 가진 최대의 장점이다.
4·16 세월호 참사는 한국 사회를 그 이전과 이후로 나눌 정도로 거대한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당장 행정부는 해경이 해체되고 안전행정부는 세 부서로 쪼개져 국가안전처·행정혁신처가 신설된다. 무엇보다 세월호 참사의 구조적 환경 요인이었던 이른바 관피아, 즉 관료 마피아 구조를 어떻게 깨느냐가 신임 총리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과제다. 행정 경험이 전무한 안 후보자가 험난한 정부 개혁을 제대로 완수할 수 있을지 회의하는 시각도 있다.
안대희 후보자는 검사로 잔뼈가 굵은 법조인 출신이라는 점에서 ‘좌(左)장군, 우(右)율사, 중(中)관료’라고 비판받는 박 대통령 편향 인사의 연장선상에 있다. 매사를 추상적인 법과 원칙으로 가르는 사고 방식으로는 현실에서 살아 움직이는 뜨거운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소통 능력은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그래서 세월호 사건으로 깊이 가라앉은 민심을 위로하고 활력을 불어넣는 데 미흡한 인사라는 평가가 있음을 안 후보자는 깊이 새겨야 한다. 이와 관련해 안 후보자가 어제 인사말에서 "세월호 사태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물질만능주의 풍토와 자본주의의 탐욕이 국가와 사회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고 말한 대목은 적절하다고 할 것이다. 시대의 패러다임을 문화와 의식 같은 내면의 변화에서 근본적으로 찾아야 할 것이다.
안 후보자가 수행할 국가 시스템의 개조는 행정부에서 시작하지만 국회에서 완성하게 된다. 특히 세월호 진상조사 작업은 국회가 주도하게 된다. 따라서 야당의 요구와 입장을 정성스럽게 경청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박 대통령 주변엔 당과 정부, 청와대를 막론하고 쓴소리를 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안 후보자 스스로 “대통령께 소신을 갖고 가감 없이 진언하겠다”고 한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다.
청와대의 총리 후보자 발표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앞으로 내각 개편은 신임 총리의 제청을 받아 진행할 것”이라고 밝힌 점이다. 박 대통령의 인사 정책은 그동안 적지 않은 비판을 받아왔다. ‘수첩인사’라고 불릴 만큼 개인적 인연과 충성심을 중시하는 데다 대중적 평판과 검증에 무심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실패를 반복했다. 그래서 대통령이 새 총리에게 폭넓은 실질적인 장관 제청권을 허용한다면 그 자체가 국정운영의 중대한 변화가 될 것이다. 그동안 대통령은 총리뿐 아니라 장관들에게 인사 자율성과 정책적 재량권을 부여하는 데 인색했다. 대통령은 권한을 위임하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세월호 비극의 교훈은 이제 더 이상 일방적 국정운영으로는 미래를 열 수 없다는 냉엄한 경종이다. 대통령이 모든 걸 끌어안고 결정하지 말고, 국민과 소통하고 국민의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황금 만능, 경쟁, 승자독식의 구조를 깨기 위해서는 시민적 교양의 핵심인 탐욕의 절제가 이뤄져야 한다. 이게 가능한 사회구조와 환경을 만드는 것이 진정한 국가개조 작업이다. 이런 근본적 성찰의 바탕에서 향후의 국정운영 기조는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당장 후속의 2기 내각인사에서는 진영을 넘어선 능력 위주의 인선으로 소통과 통합의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박 대통령이 굳게 약속한 ‘100% 대한민국’의 실현에 다가갈 수 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참고: 블로그의 회원만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