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22일 목요일

경향_[사설]낙하산 못 걷어내면 KB금융은 3류 못 벗어난다

KB금융 수뇌부 갈등이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특히 이번 갈등은 사실상 낙하산으로 임명된 지주 회장과 국민은행장의 충돌이라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한때 국내 최고 금융기관이라는 명성은 물론, 신뢰를 생명으로 하는 금융회사라 말하기조차 민망할 정도이다.

이번 사태의 발단은 사업비 2000억원 규모의 전산시스템 교체에서 비롯됐다. 임영록 회장 측 인사들이 장악한 KB이사회는 기존 IBM시스템을 유닉스로 교체키로 의결했다. 이에 대해 이건호 행장 진영의 정병기 감사는 감사보고서를 통해 이사회 결정의 문제점을 제기했으나 이사회 보고조차 거부당했다고 한다. 정 감사는 금융당국에 조사를 의뢰했고 당국은 특별검사에 들어간 상태다. 금융계에서는 KB지주 고위층의 리베이트 수수 얘기까지 나오는 모양이다. 전산시스템 교체과정의 문제점은 당국이 조사하면 확인될 터이다. 정작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사태의 뒷모습이다. 

KB의 잇단 추문은 낙하산 인사의 폐해를 여실히 보여준다. 정부는 KB 주식을 한 주도 갖고 있지 않지만 실제로는 지주 회장과 은행장 임명을 좌우해왔다. 이명박 정권 때는 황영기 회장을 퇴출시킨 데 이어 강정원 행장의 회장 선임을 막고 어윤대 회장을 낙하산으로 내려보냈다. 지주 사장 자리는 기획재정부 차관 출신의 임영록 현 회장이 차고 들어왔다. 어 회장과 당시 임 사장 간의 불협화음은 새삼스럽지 않을 정도다. 그런 임 사장은 새 정권 들어 회장으로 발탁됐고, 이번에는 금융연구원 출신인 이건호씨가 박근혜 정권 금융실세의 도움을 얻어 국민은행장으로 임명됐다. 지주 회장과 은행장은 상하와 대립이 공존하는 미묘한 관계다. 돈은 은행이 벌지만, 인사권은 지주에 있다. 

경영진이 세력 키우기에 열중하는 사이 경쟁력은 후퇴했다. 2011년 2조3000억원에 이르던 KB의 순이익은 2012, 2013년 각각 전년 대비 27%씩 줄었다. 이 과정에서 대출서류 위조, 고객예금 횡령, 도쿄지점 부당대출, 고객정보 유출 등 추문이 끊이지 않았다. 위아래 가릴 것 없는 도덕적 해이인 셈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KB의 최우선 과제는 투명한 지배구조 구축이다. 정권의 전리품으로 전락한 지주 회장과 은행장 자리는 되돌려놓아야 한다. 옥상옥으로 비판받아온 금융지주 체제 전반에 대한 재검토도 병행돼야 한다. 국내 은행들은 2001년부터 잇달아 지주회사 체제를 도입했지만 계열사 간 효율적 업무 조정을 통한 경쟁력 강화라는 본연의 역할보다는 내부 갈등만 표출되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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