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19일 월요일

위험을 피하려면 멈추는 것을 알아야 한다,지지소이불태(知止所以不殆)= 노자(老子)

위험을 피하려면 멈추는 것을 알아야 한다,지지소이불태(知止所以不殆)= 노자(老子)


무턱대고 진격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작가 노신의 조조에 대한 평가

'치세의 능신,난세의 간웅'으로 불리는 조조를 작가 魯迅은 평했다.

"사실 조조는 극히 유능한 인물이었으며 적어도 하나의 영웅이었다."


조조가 뛰어난 점

첫째,과감한 인재등용을 시도했고,

둘째,전락전술에 능했으며,

셋째,결단력이 풍부했다.

그리고,형세가 불리하다고 판단되면 결코 무리를 하지않고 과감히 철수 작전으로 바꾸었다.

※조조와 측근 사마중달과의 대화

사마중달이 한중(漢中)에 쳐들어갔을 때 진언했다.

"당장에 진공을 해야 합니다.
이러한 기세로 그대로 나간다면 유비를 멸망시키는 것쯤은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조조는 답했다.

"사람이란 만족을 다하지 못해 괴로워한다.이미 롱우(隴右)를 얻었는데 또 촉(蜀)마저 얻으려고 욕심을 내는가." 

기세를 타고 일어나면 멈추기가 매우 어렵다.


조조와 계륵의 일화

형세가 불리하다고 판단되면 즉시 철퇴하는 것도 전략 중의 하나

몇년 후 이번에는 유비 쪽 대군이 한중(漢中)으로 쳐들어가 기세를 올렸다.

조조가 저녁상의 계륵(鷄肋=닭의 갈비뼈에 먹을 만한 고기는 없으나 버리기는 아깝다는 뜻)에 눈을 멈추고,

"계륵이야,계륵이야..."

라고 소리질렀다.

그 뜻을 여러 장수가 알지 못했고,서기관인 양수(揚修)가 그 말을 듣고 한중을 계륵으로 왕이 생각하는 것을 알아채고 거침없이 철군 준비를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조조는 한중을 포기하고 돌아간 것을 기뻐했다.

그래서 이 일화에서 계륵이라는 말이 생겨나게 되었다.

☆주석 : 계륵

'닭의 갈비'라는 뜻으로, 큰 쓸모나 이익은 없으나 버리기는 아까운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鷄 : 닭 계
肋 : 갈비 륵
닭의 갈비는 먹을 것은 없으나 그래도 버리기는 아깝다는 뜻에서, 무엇을 취해 보아도 이렇다 할 이익은 없지만 버리기는 아까움을 나타내는 말이다. 《후한서(後漢書)》의 〈양수전(楊修傳)〉에서 유래된 말로, 당시 위(魏)나라 조조(曹操)는 촉(蜀)나라 유비(劉備)와 한중(漢中) 땅을 놓고 싸우면서 진퇴를 놓고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밤 늦게 암호를 정하려고 찾아온 부하에게 조조는 그저 계륵(鷄肋)이라고만 할 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부하는 돌아가 막료들과 계륵이 무슨 뜻인지 상의하였으나 아무도 영문을 알지 못하는 가운데, 주부(主簿)로 있던 양수(楊修)만이 조조의 속마음을 알아차리고 짐을 꾸리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이 이유를 묻자 양수는 "무릇 닭의 갈비는 먹음직한 살은 없지만 그냥 버리기는 아까운 것이다. 공은 돌아갈 결정을 내릴 것이다(夫鷄肋 食之則無所得 棄之則如可惜 公歸計決矣)"라고 말하였다. 양수는 계륵이라는 말에서 한중 땅이 계륵과 마찬가지로 버리기는 아깝지만 그렇다고 무리해서 지킬 만큼 대단한 땅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조조의 의중을 파악한 것인데, 과연 그의 말대로 조조는 이튿날 철수 명령을 내렸다.

한편,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서 양수는 재능을 믿고 오만한 인물로 묘사되며, 조조의 심기를 여러 차례 건드린 끝에 계륵 사건을 계기로 군심(軍心)을 소요하게 한 죄목으로 참수되었다. 다른 정사(正史)에서는 조조가 한중에서 철수한 지 몇 달 뒤에 양수가 군기를 누설하였다는 이유로 처형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위험 관리는 리더의 몫이다.
계륵이라는 판단과 계륵을 버릴 지혜를 고사를 통해 읽힌다.


☆일본 모리야 히로시의 책, "중국인의 80가지 지혜"에서


Richard Marx -- *Right Here Waiting*(바로 여기서 기다리리라)

4분23초...
             
미국의 락커 '리차드 막스(1963년생)'의 89년 넘버원 싱글로 차분한 분위기의 키보드 반주와 어쿠스틱 기타 연주 그리고 '리차드 막스'의 절제된 보컬이 조화를 이룬 곡...
                                         
http://youtu.be/S_E2EHVxNAE
             


청나라 황제 옹정제의 일화 중 하나

지금의 중국을 만든 강희대제,옹정제,건륭제의 중 옹정제(1678~1735)는 지방관에게 감시인을 붙이고 비밀 상소제도인 밀절제도를 통해 부패를 방지하고 권력을 장악한다.

참고로 그의 통치철학을 덧붙인다.

천하가 다스려지고 다스려지지 않고는 나 하나의 책임,
이 한몸을 위해 천하를 고생시키는 일은 하지 않으리라.
(原以一人治天下,不以天下奉一人)

옹정제 시기의 관리인 왕사준(王士俊)이라는 사람은 지방관에 임명되었고,
이제 지방으로 떠나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왕사준을 누군가가 찾아왔습니다.



다름 아닌 군기처 대신 장정옥 이었습니다. 청나라의 유명한 명신으로 꼽히고 아버지는 순치- 강희제 시절에 대학사를 지낸 장영이라는 인물이었죠.


여하간아 장정옥은 왕사준에게 말했습니다.

"지방관으로 내려간다고? 그렇다면 도와줄 사람이 필요할텐데."

"그럴 사람이 있어야지요."

"내가 적당한 인물을 아네. 추천해주면 어떨까?"


그래서 왕사준은 장정옥이 추천해 준 시종과 같이 지방으로 내려가서 일을 했습니다.

왕사준은 열심히 일했고, 시종과는 마음도 맞고 손발이 척척 좋았는데, 어느날 옹정 황제를 알현하러 갈 일이 생겨서 왕사준이 떠나려고 하는데, 시종이 갑자기 사임을 청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떠나려고 합니다."

"아니, 어째서인가? 내가 자네에게 섭섭하게 대해준게 있는가?'

"아닙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하는것입니다.

"주인님은 몇년동안 아무런 과오 없이 일을 잘 처리하셨습니다. 이제 먼저 폐하를 뵙고 상황을 보고해야 합니다."


알고 보니 그 시종은 옹정제가 신하들을 감시 - 사찰이라고 표현해도 되겠는데, 그러려고 보낸 인물이었고, 무려 몇년동안 왕사준과 같이 지내면서 그를 철저하게 감시, 부정부패를 저지르는지 알아보고 황제에게 보고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흔히 자주 알려진 밀절(密折), 즉 비밀 상소문을 이용한 감시 외에도 옹정제가 지방 관리들의 부패를 알아보기 위해 이런 수도 썼지요.

여담으로 왕사준은 건륭제 시절때 허위 보고 했다고 파직되었는데, 이 시점에선 먼 이야기고


옹정제는 자기 스스로 감시하는 외에도, 신하들을 서로 교차시켜 염탐하도록 했는데,

이를테면  광동 순부 부태(傅泰)는 광동 포정사인 왕사준을 감시하고 있었는데, 옹정제가 특별히 자기에게 속내를 터놓고 이런 일을 부탁했다고 생각했기에 신임을 받고 있다는 생각에 열심히 왕사준이 잘못된 일을 저지르는지 주시했습니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왕사준은 또 옹정제에게 개인적으로 부태를 감시하라는 명령을 받고 역시 황제가 자신을 신임해서 특별히 비밀 임무를 내려주는것으로 알고, 부태가 비리를 저지르는지 감시했습니다. 그렇게 서로는 옹정제의 꼭두각시가 되어 주시하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나를 미소 짓게 한 당신이 최고
/ 좋은 글과 음악

4분23초...

 http://m.cafe.daum.net/lky06781/LlHk/329?boardType=M&regdt=20140119171317&listURI=%2Flky06781%2F_rec%3FboardType%3DM



유머,남자의 맞짱

화장실이 급해서 노크없이 문을 확 열어 젖혔다.

동시에 쏟아지는 앙칼진 여자의 욕지거리.

그렇다고 내가 물러설 것 같애!

한마디 해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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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곳에 들어가더니
입도 더러워졌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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