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22일 목요일

조선_[사설] 安 후보자, '책임 총리' 실천할 각오 없으면 시작도 말라

박근혜 대통령은 22일 신임 국무총리에 대검 중수부장 등을 지낸 검찰 출신 안대희 전 대법관을 내정했다. '국민 통합형 총리'가 아니라 해묵은 적폐와 싸울 총리를 선택한 것이다. 청와대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관행과 공직 사회의 적폐를 척결하고 국가 개조를 추진하기 위해 새 국무총리를 내정했다"고 설명했다. 안 후보자 역시 이날 "국가의 기본을 바로 세우는 데 저의 모든 것을 다 바치겠다"며 "대통령을 진정으로 보좌하기 위해 가감 없이 진언(進言)하도록 하겠다"는 결의를 밝혔다.

박 대통령은 2012년 8월 대선을 넉 달 앞둔 시점에 당시 대법관에서 막 퇴임한 안 후보자를 새누리당 '정치쇄신 특별위원장'으로 발탁했다. 안 후보자는 2003년 대검 중수부장 시절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의 2002년 불법 대선 자금 수사를 지휘하면서 한나라당에 '차떼기 정당'이라는 오명(汚名)을 안겼던 인물이다. 박 대통령이 이런 안 후보자를 영입한 것은 그가 갖고 있는 '강직한 검사'와 '법과 원칙'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정치 쇄신과 부패 척결' 의지를 국민에게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박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이후 내각을 이끌 새 총리로 안 후보자를 다시 선택한 이유 역시 2년여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우리 사회의 환부(患部)와 관피아(관료 마피아)라는 말까지 유행시킨 공직 사회의 부정부패와 무사안일을 바로잡을 적임자로 법조인 출신인 안 후보자를 고른 것이다.

안 후보자는 새누리당 당직을 맡았던 넉 달여 짧은 기간 동안 박 대통령과 충돌한 적이 있다. 그는 박 대통령이 국민 대통합 차원에서 구(舊)야권 인사들을 영입하려 하자, 그중 일부가 과거 불법 정치 자금으로 사법 처리된 적이 있다며 내놓고 반대했다. 이 일을 계기로 대통령과 안 후보자의 사이가 멀어졌다는 말이 돌았다. 실제 박 대통령의 1기 내각에서는 아무 역할도 맡지 못했다. 그간 충성도를 인사(人事)의 중요 기준으로 삼아온 박 대통령이 안 후보자를 선택한 것은 인사 실험에 가깝다.

그러나 안 후보자의 역할이 결국엔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도 적지 않다. 헌법은 명백하게 총리에게 각료 제청권을 부여하고 있지만, 역대 대통령들은 이 총리의 권한을 무시해왔다. 특히 이 정부에선 역대 어느 정권보다 청와대로 권한과 기능이 집중돼 있는 상태다. 대통령이 국정의 모든 사안을 처음부터 끝까지 일일이 관장한다고 해서 '만기친람(萬機親覽)'이란 말이 나왔고, 총리를 비롯한 장관들은 대통령 지시를 그대로 받아 적는 '받아쓰기 내각'이란 지적도 받았다. 게다가 청와대 비서진을 이끄는 김기춘 비서실장은 안 후보자의 대학·검찰 직계 선배다. 그러니 안 후보자가 총리가 되더라도 곧 벽에 부닥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안 후보자가 2012년 대선 때 새누리당 '정치쇄신 특별위원장'으로서 내놓은 대표 공약이 '책임 총리·책임 장관제'다. 안 후보자는 그간 문제로 지적돼 온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줄이기 위해선 책임 총리·책임 장관제가 필요하다고 역설했고, 결국 이 내용을 박 대통령의 주요 대선 공약에 포함시켰다. 그런 안 후보자가 바로 이 공약을 제대로 실천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시험대 위에 직접 서게 된 것이다. 안 후보자는 자신이 만든 책임 총리 공약을 제대로 실천할 자신이 없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그만두겠다는 각오를 가져야 한다.

세월호 사건은 큰 인명 피해를 부른 참극이지만 기본적으로 사고(事故)다. 이 사고의 책임이 곧바로 대통령에게로 향하고 유족들도 모든 문제를 대통령에게 호소하는 것은, 이 정부에 보이는 사람이라곤 대통령 한 사람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정상이라고 할 수 없는 이 구조는 앞으로 국가 운영에 계속 문제를 만들어 낼 것이다. 박 대통령이 이번 일을 통해 무엇을 깨달았는지는 새 총리와 새 장관들이 실제 권한을 갖고 소신을 펴는지를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국정 운영의 정상화는 결국 대통령의 생각이 바뀌느냐 않느냐에 달려 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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