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광주광역시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34주년 기념식은 박근혜 정부 들어 훼손되어온 5·18민주화운동의 ‘자리’를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기념식은 ‘임을 위한 행진곡’의 기념곡 지정과 제창을 둘러싼 논란으로 5·18유공자와 유족, 시민사회단체 상당수가 불참해 반쪽 행사에 그쳤다. 박 대통령은 기념식에 불참했고,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당은 별도의 추념식을 가졌다. 5·18기념식의 파행은 국가보훈처가 ‘임을 위한 행진곡’의 기념곡 지정은커녕 참석자들의 제창도 거부하면서 예고된 것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5월 정신’을 오롯이 담고 있고, 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노래이다. 지난해 이미 새누리당이 여당인 국회에서 이 노래를 기념곡으로 지정하자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무엇보다 5·18유공자와 유족, 광주 시민들이 절실히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기를 원하는데도 한사코 정부가 이를 거부해 5·18민주화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기념식마저 최악의 파행을 빚게 한 것이다.
5·18민주화운동의 가치에 대한 뒤틀린 역사인식은 이날 반쪽 기념식 행사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기념식장에 마련된 유족석의 상당 부분은 보훈단체 회원과 동원된 사람 등이 채웠다고 한다. 급조된 합창단의 일부 단원은 ‘오월의 노래’가 연주되는 동안 입조차 열지 못하거나 립싱크를 하는 촌극까지 벌어졌다. 오죽하면 유족들이 “가짜 추모객들까지 동원해 정부가 지키려는 가치가 무엇이냐”고 울분을 토했을까 싶다. 보훈처는 경과보고에서 5·18민주화운동의 발발 배경과 진행, 무자비한 정부 폭력에 의한 희생의 실상을 축소하거나 왜곡했다. ‘계엄군의 광주시민 해산 시도’라는 표현으로 계엄군의 폭력진압을 불법시위 해산 정도로 둔갑시켰다. 박근혜 정부 들어 지속적으로 벌어져온 5·18민주화운동의 의의를 부정하고 폄훼·조롱하는 반역사적 책동의 뿌리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알 만하다.
세월호 참사로 슬픔과 고통에 빠진 국민을 보듬고 하나로 모으는 통합과 화해의 리더십이 절실한 때이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의 와중에서도 방송통신심의위원장에 이념적으로 편향된 대선 캠프 출신 인사를 내정하고, 청와대 민정비서관에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주임검사를 임명하는 반통합 인사를 계속하고 있다. 반쪽짜리 5·18기념식을 초래한 것도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이 여전히 통합의 정치보다는 국민을 편 가르고 갈등을 야기하는 분열의 정치에 빠져있는 것 같아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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