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19일 월요일

경향_[사설]‘대통령의 변화’는 보기 힘든 대국민담화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발표한 세월호 대국민담화에서 사과와 함께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다”고 밝혔다. 시기적으로 늦은 아쉬움이 크지만, 이제나마 직접 사과를 하고 대통령으로서 포괄적 책임을 인정한 것은 평가한다. 담화는 그러나 세월호 비극의 상처를 치유하고 나라를 새롭게 바꾸어 나가는 전환점을 마련하기에는 내용과 비전이 부족하고 미흡했다.

박 대통령의 담화는 “대안을 갖고 사과하겠다”고 예고한 대로, 대부분 사후 대책과 대안을 제시하는 데 할애했다. 안전 업무를 일원화한 거대 국가안전처 신설 등 정부조직 개편, 소위 ‘관피아’ 척결과 공직사회 개혁 등의 방안을 제시했다. 세월호 구조·수습 과정에서 난맥을 드러낸 해양경찰청을 해체하고, 안전행정부도 안전업무는 국가안전처, 인사·조직은 총리실 산하 행정혁신처로 이관해 사실상 해체 수준으로 축소한다.

박 대통령이 담화에서 제시한 세월호 대안들이 과연 사태에 대한 성찰과 정확한 진단을 바탕으로 나온 것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사고 원인과 진상 규명-책임자 처벌-재발방지 대책 마련’의 절차를 무시하고 사후 대책을 먼저 내놓은 꼴이기 때문이다. 사고 원인과 진상, 구조·수습 과정에서 무능과 부실을 철저히 규명하고 책임을 묻지 않은 상태에서 마련한 대안은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관료들의 탁상에서 급조된 졸속, 전시용 대책에 머물기 쉽다. 세월호 수색 작업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해경 해체부터 발표해 남은 실종자 가족들의 분노를 자초한 것이 그 예다. 온전한 대안을 찾으려면 세월호 사고의 원인과 경과, 수습 과정에서 정부의 무능·혼선을 철저히 규명하고 책임 소재를 밝히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책임의 당사자인 정부가 독자적으로 진상규명과 수습책을 마련하는 것은 국민적 신뢰를 얻기 어렵다. 세월호 유가족들과 시민사회가 범국민 조사위원회 구성을 요구하는 이유이다. 박 대통령은 “여야와 민간 조사위원회를 포함한 특별법을 만들 것도 제안한다”고만 했다. 도입 의사를 밝힌 특검도 “필요하면”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요구를 수용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공을 국회로 떠넘긴 것이다. ‘세월호 이후’로 가기 위해선 초당적 민간조사위원회 구성과 특검 도입이 필요하다.

박 대통령은 담화에서 해경과 안전행정부, ‘관피아’, 유병언, 무사안일한 공직사회 등의 책임을 물었다. 그래놓고 청와대와 내각의 책임 문제는 빠뜨렸다. 청와대와 내각의 인적 쇄신에 대한 언급도 없다. 사태의 책임이 있는 이들이 자리를 지키고 앉아서 조사를 받고, 대안을 입안·실행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무능한 ‘수첩장관’, 대통령의 지시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 ‘받아쓰기’ 참모들에 대한 인적 쇄신이 이뤄지지 않으면, 해경 해체 같은 대책을 수십개 내놓더라도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다. ‘관피아’ 혁파와 공직사회 개혁 역시 구두선에 머물기 십상이다.

결국은 대통령 자신이 관건이다. 이번 담화 발표가 세월호 참사에 대한 뼈저린 성찰을 바탕으로 안전한 나라를 만들어가는 시발점이 될 수 있으려면 대통령의 변화, 잘못된 국정운영 기조의 변화가 수반되어야 한다. 세월호 유족의 슬픔을 보듬고 상심한 국민을 하나로 모으려면 불통과 독선, 만기친람의 대통령 리더십부터 달라져야 한다. 세월호 침몰사고 발생 34일째에야 사과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면서도 기자들과의 질의·응답 없이 일방 전달로 끝냈다. 처음으로 눈물까지 쏟은 박 대통령의 대국민담화가 울림이 부족한 것은 바로 대통령의 진정한 자세 변화, 국정 혁신의 의지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참고: 블로그의 회원만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