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친절한 금자씨>에서 금자씨가 누명을 쓰고 13년을 복역한 뒤 교도소 문을 나설 때 교회 목사가 건네는 하얀 두부를 엎으며 남긴 한마디 “너나 잘하세요”. 그 말이 시대를 관통하며 살아남은 건, 자기 허물은 보지 못하면서 남을 단죄하는 적반하장이 만연하기 때문일 터이다. 한편으로 ‘너나 잘하세요’는 친절한 금자씨의 그 서늘한 표정이 웅변하듯, “너와 더불어 살 생각이 없다”는 선언이다. 그래서 ‘너나 잘하라’는 공존과 대화를 기축으로 하는 정치의 영역에선 통용되어서는 안될 배제의 언어일 것이다.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가 엊그제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공동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는 도중에 “너나 잘해”라고 말해 논란이 되고 있다. 안 대표가 연설에서 “왜 기초 공천 대선공약 폐기를 여당의 원내대표가 사과하시는지요. 충정이십니까? 월권이십니까?”라고 말하는 순간 최 원내대표가 “너나 잘해”라고 소리를 질렀다.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상대방 정당 의원들의 항의와 고함 등이 빚어지는 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당의 대표자가 직접 나서 시정잡배나 다름없는 막말을 퍼부은 것은 전례를 찾기 힘들다. 최소한의 예의는커녕 몰상식의 극치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이나 새누리당 교섭단체 대표연설 때 야당 원내대표가 “너나 잘해”라고 소리쳤다면 대체 뭐라 했을지 궁금하다. 한심한 건 막말의 심각성에 대해 전혀 깨닫는 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과는커녕 야당 대표를 “초짜” “하룻강아지” 운운하는 새누리당 대변인 논평이 나왔을 터이다. 제1야당의 대표를 ‘아랫사람’ 취급하는 독재적 인식과 오로지 청와대만 쳐다보는 ‘종박’의 노예적 근성을 보여준다.
집권여당의 원내대표는 대야 협상과 대화를 이끌면서 정치를 풀어가야 할 주역이다. 대화의 상대 정당 대표의 국회 연설에 대해 막말을 내뱉으며 모욕을 안겨주면서 어찌 정치의 복원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최 원내대표가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주창한 “상식의 정치”는 언감생심이다. 그는 “왜곡과 분열의 막말 저질 정치가 우리 정치의 선진화를 가로막고 있다”며 야당을 비판한 바 있다. 그런 그가 야당 대표의 국민을 상대로 한 국회 연설에 “너나 잘해”라고 소리치며 소속 의원들의 막말 대응을 선도했다. ‘막말 정치 청산’이 유독 그에겐 예외라도 된다는 것인가. 정치 선진화를 가로막는 막말 정치의 퇴출을 위해서라도 최 원내대표는 “너나 잘해” 발언에 대해 사과하고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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