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조직의 수준과 역량은 최고책임자의 그것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법이다. 조직은 형편없는데 우두머리만 능력이 탁월하다거나, 조직은 나무랄 데 없이 우수한데 수장만 함량 미달인 경우는 거의 없다는 뜻이다. 엊그제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혁신연대 초청 간담회에 강사로 참석한 김성호 전 국가정보원장의 발언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김 전 원장은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을 지칭해 “북한은 남남갈등으로 통일을 이루겠다는 전략 아래 국회에 진출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종북세력은) 법원과 검찰, 언론기관에도 침투했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보통 일이 아니다. 국가 체제를 떠받치는 법원과 검찰, 여론을 반영·형성하는 언론에도 국가를 전복하려는 세력이 암약하고 있다면 대한민국은 이미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이런 국가적 위기를 감지했다면 ‘법원, 검찰에 종북세력 있다!’고 외마디 고함을 지를 게 아니라 즉각 수사당국에 신고해야 한다. 만약 아무런 근거 없이 이런 발언을 했다면 국가 최고정보기관의 수장을 지낸 인사로서는 결코 해서는 안될 무책임한 선동을 한 셈이다.
국정원의 간첩 증거조작과 관련한 김 전 원장의 발언은 과연 국정원장과 법무장관을 지낸 인물의 수준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 그는 “위조라고 믿고 싶지 않은데 어쨌든 애국심이 강해서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애국심이 강하면 국가의 기틀과 사법체계를 유린하는 중대 범죄행위도 할 수 있다니, 그가 말하는 애국심은 도대체 어떤 것인가. 국정원이 중국 공안당국의 문서까지 위조하는 바람에 한·중관계에 악영향을 미쳤으며, 서구의 주요 언론매체는 이 전대미문의 사건을 끊임없이 보도함으로써 대한민국의 명예는 크게 실추되고 있다. 애국은커녕 국익을 심대하게 훼손한 ‘해국(害國) 행위’인 것이다.
그는 또 “유우성씨는 간첩이 맞으며 간첩이 국정원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고도 했다. 국정원이 쑥대밭이 된 것은 맞다. 그러나 그것은 유씨 때문이 아니라 국정원이 유씨를 간첩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스스로 저지른 범죄 때문이다. 김 전 원장은 근거 없는 매카시즘적 발언과 적반하장 식의 망언을 삼가야 한다. 그 대신에 국정원이 진정 국민적 신뢰를 받는 국가 정보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충언과 고언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전직 국정원장의 책무일 것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참고: 블로그의 회원만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