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병우 광주지방법원장이 그제 대법원에 사표를 제출했다. 그는 2010년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에게 ‘일당 5억원’ 판결을 했던 장본인이다. 장 원장은 사의 표명과 함께 “최근 저를 둘러싼 여러 보도와 관련해 한 법원의 장(長)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며 국민에게 사과의 뜻을 밝혔다. 그는 “양형사유들에 대한 종합적이고 분석적인 접근 없이 한 단면만 부각되고 지역 법조계에 대한 비난으로만 확대된 점에 대해 아쉽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물론 판결에 법률적인 하자가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연간 2억원 이상의 조세포탈범에 대해 징역형과 함께 탈세액의 2~5배에 달하는 벌금을 병과하도록 한 법 규정이 가혹해 보이는 건 사실이다. 법인세에 가산세까지 납부한 허 전 회장에게 검찰이 선고유예를 요청한 상태에서 노역장 유치를 선고했다는 점에서 “납세윤리 확립”(판결문)에 치중한 것이란 설명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일당 5억원’은 대다수 국민의 상식과는 동떨어진 것이다. 법원이 법 논리에 매몰돼 국민의 건전한 법 감정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법치주의는 법전(法典) 주변만 맴돌 수밖에 없다.
더욱이 판결이 여론의 도마에 오른 뒤 법원과 검찰이 보여온 자세는 법에 대한 냉소주의를 짙게 하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 28일 전국수석부장판사회의를 열고 벌금 노역(환형유치)제도의 권고 기준안을 마련했다. 벌금이 1억원 이상인 때에는 원칙적으로 1000일간 노역을 시킨다는 것이다. 이런 개선안은 지나치게 기계적인 것으로 그간 법원 자신의 설명과도 부합되지 않는다. 검찰 역시 논란이 커지자 뒤늦게 허 전 회장 노역장 유치를 중단시키고 강제 징수에 나섰다. 수사로 압박해 벌금을 받아내겠다는 얘기다. 법원과 검찰 모두 “법대로 했다”는 점을 강조하다가 자신들이 주장해온 법 원칙까지 깔아뭉개는 우(愚)를 범하고 있다. 황제 노역이 문제 됐다고 해서 제도 전반을 재검토하지 않고 환형유치만 뜯어고치거나 은닉재산 찾기에 ‘전두환 추징 방식’을 동원하는 것은 사태를 오도하는 것이다. 그러니 안이하다거나 무감각하다는 지적을 받는 것 아닌가.
이번 파문은 사법 개혁이 제도를 넘어 문화와 의식의 문제임을 보여주고 있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취임 후 국민과의 소통을 역설해 왔으나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판사들의 생각과 자세가 바뀌지 않는 한 달라질 것은 없기 때문이다. 만일 자발적인 개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외부로부터의 개혁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사법부의 근본적인 반성과 개혁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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