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어제 한국은행을 찾아 이주열 총재와 만났다. 그제 정식 취임한 이 총재를 축하하는 자리였다고 한다. 재정정책과 통화정책 수장 간의 회동을 색안경 끼고 볼 필요는 없다. 2009년 2월 당시 윤증현 기재부 장관이 취임 뒤 한은을 찾아 이성태 총재를 만난 적도 있다. 다만 현 부총리가 미주개발은행 총회를 마치고 브라질에서 돌아온 뒤 곧바로 이 총재를 찾았다는 것은 여러 의미가 있다. 당장 발표문이 흥미롭다. 두 사람은 회의 뒤 “경제정책과 통화정책 간 조화를 이룸으로써 한국경제의 안정적 성장을 뒷받침하도록 노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술 더 떠 현 부총리는 “기재부와 한은은 정책을 운용함에 있어 항상 국민을 위한 길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책 불협화음이 일어서는 안된다는 뜻일 게다. 이는 전임 김중수 총재 시절 통화정책을 둘러싼 엇박자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김 전 총재는 취임 초 ‘한은도 정부’라고 말할 정도로 정부와 밀월을 유지했지만 후반기에는 경기부양을 앞세운 정부의 금리인하 요구에 맞서는 등 독립적인 정책을 운용했다.
그런 점에서 이 총재의 생각과 판단은 매우 중요하다. 골수 한은맨인 이 총재는 당초 물가안정을 중요시하는 전통적 매파로 분류됐다. 하지만 “중립적 범위 안에서 정부 정책에도 협조해 궁극적으로 경제발전에 이바지하는 조합을 찾을 것”(인사청문회), “물가안정뿐 아니라 금융안정과 성장 또한 조화롭게 추구하라는 시대적 요구를 어떻게 담아낼지 연구해야 한다”(취임사)는 발언을 종합하면 비둘기 쪽에 가깝다는 게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 잇단 발언은 그동안 한은의 임무로 부과됐던 물가와 금융안정에서 훨씬 더 나아간 것이다.
한은의 독립성을 내세워 독불장군식으로 행동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성장을 강조하는 정부와 단일대오를 형성하는 것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현재의 한국경제는 양극화 심화 등 성장만으로 풀지 못하는 현안들이 산재해 있다. 오죽하면 국제통화기금(IMF)마저 소득 재분배를 촉구하는 상황이겠는가. 사안에 따라서는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이 충돌할 수도 있는 게 당연하다. 과거 한은의 잘못된 금리정책이 현재 맞닥뜨리고 있는 가계부채 문제의 근원이라는 금융연구원의 자아비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당시 한은의 통화정책 배후에 정부가 있었다는 것은 쉬 짐작할 수 있다. 단기 정책성과를 바라는 정부에 한은이 휘말리게 되면 국민경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된다. 한은은 한국경제의 버팀목이다. 방어막을 쳐야 할 때는 단호히 ‘노(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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