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일 화요일

경향_[사설]남재준 국정원장, 이래도 버틸 텐가

검찰의 대선개입 사건 수사에 조직적으로 저항했다. 2급 기밀문서인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했다. 청사에서 허위 증거물을 만들어 외부로 발송했다.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無名)의 헌신’을 모토로 하는 국가정보원이 지난 1년간 벌인 일들이다. 국가 최고 정보기관의 행태라고는 믿기 힘든 이 모든 사건의 정점에 남재준 국정원장이 있다.

간첩사건 증거위조 혐의로 기소된 국정원 김모 과장의 공소장에 따르면, 김 과장과 권모 과장은 피고인 유우성씨의 출입경기록에 대한 사실확인서를 위조해 서울 내곡동 국정원 사무실에서 인터넷팩스로 선양총영사관에 보냈다고 한다. 가짜 문서를 진짜처럼 보이게 하려고 발신번호를 중국 허룽시 공안국 대표전화로 조작하기도 했다. 가짜 팩스가 발송되는 그 시간, 남 원장은 국정원 청사 어디에선가 업무를 보고 있었을 터이다. 상상만 해도 기괴한 풍경이다. 남 원장이 증거조작을 지시했거나 보고받았는지는 조만간 드러날 것이다. 하지만 그가 위조 사실을 전혀 몰랐다 해도 면책될 수는 없다. 정보기관장에게는 태만과 무능도 용납되지 않는다. 더욱이 증거조작 수사의 고비고비마다 국정원이 되풀이한 온갖 발뺌과 거짓말은 모두 남 원장의 책임 아닌가.

지난해 남 원장은 국정원이 대선에 개입한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자 2007년 정상회담 회의록을 돌연 공개했다. 스스로 정쟁의 한복판에 뛰어든 데 대해 “국정원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런데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이 불거진 뒤에는 입을 굳게 닫고 있다. 국정원의 명예 수준이 아니라 국정원의 존립기반 자체가 허물어질 위기인데도 말이다. 납득하기 힘든 행태이다. 남 원장이 그나마 남은 명예라도 지키고 싶다면 당장 국민 앞에 사과하고 물러나야 할 것이다.

국정원은 대통령의 지시와 감독을 받는 기관이다. 따라서 국정원의 과오는 대통령의 리더십 문제로 직결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자질 미달 인사를 최고 정보기관 수장에 앉히고, 이 수장이 국기문란 행태를 일삼는데도 감싸기로 일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지난달 박 대통령은 증거조작 사건에 유감을 표명하며 “수사 결과 문제가 드러나면 반드시 바로잡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당시에도 증거위조가 명백했지만 대통령은 검찰 수사를 기다려보자고 했다. 이제 수사는 사실상 마무리됐고, 문제를 바로잡는 일이 남았다. 남 원장이 사퇴하지 않는다면 박 대통령이 해임하는 길밖에 없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외치는 박 대통령이 남 원장을 어떻게 처리할지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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