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30일 일요일

경향_[사설]‘황제 노역’ 재판장 사퇴, 사법정의 성찰 계기 돼야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 사건의 항소심 재판장이었던 장병우 광주지법원장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장 법원장은 허 전 회장에게 벌금 254억원을 선고하면서 노역으로 대신할 경우 일당을 5억원으로 환산토록 해 ‘황제 노역’ 판결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여기에 대주건설이 지은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기존 아파트를 대주그룹 계열사에 판 사실까지 드러났다. 사표가 수리되면 10년 만에 법원장이 불명예 퇴진하는 사례가 된다. 경위야 어찌 됐든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법관들은 이번 사태를 사법정의의 본질을 돌아보고 법관의 책무를 되새기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장 법원장은 언론에 배포한 글에서 “책임을 통감한다”며 국민에게 사과했다. 그러면서도 “양형 사유들에 대해 종합적이고 분석적인 접근 없이 한 단면만 부각돼 아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직도 사태를 직시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황제 노역 논란은 양형 사유라는 지엽적 차원에서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사법의 정의, 사법의 형평이라는 본질적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 법관들에게는 흔히 빠지는 오류가 있다. 판결은 전문가인 자신들이 알아서 할 일이고, 시민의 법감정 따위는 중요치 않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사법정의는 특정 집단이 전유하는 가치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대법원은 지난 28일 전국 수석부장판사회의를 열어 벌금을 노역으로 대신하는 환형유치 제도의 개선방안을 마련했다. 1억원 이상 벌금형을 선고할 경우 노역 일당이 벌금액의 1000분의 1을 넘지 못하도록 했다. 기간에도 하한선을 둬 100억원 이상 벌금을 내지 못하면 900일 이상 노역장에 유치하도록 했다. 대법원은 또 ‘황제 노역’ 판결의 배경에 지역법관(향판) 제도가 있다는 비판론에 따라 지역법관제를 폐지하거나, 판사가 승진할 때마다 다른 권역에서 순환 근무토록 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에 마련한 환형유치 기준은 권고사항일 뿐이다. 입법화하지 않는 이상 독립적 헌법기관인 법관을 강제할 수 없다. 요체는 개별 법관들이 투철한 사명감과 고도의 윤리의식으로 재판에 임하는 일이다. 박병대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은 “재판권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아 행사하는 것이다. 국민을 납득시킬 수 있는 재판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본질을 제대로 짚었다고 본다. 판사들은 특권의식이나 선민의식을 버리고, 시민이 생각하는 사법정의가 무엇인지 귀를 열어야 한다. 법원이 시민의 눈높이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졌다면 ‘일당 5억원’ 판결이 나올 수 있었겠는가. 사법부의 맹성을 촉구한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참고: 블로그의 회원만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