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의 증거를 위조한 혐의로 국가정보원 김모(48) 과장과 국정원 협력자 김모(62)씨를 재판에 넘겼다. 국정원 김 과장은 "문제 될 리 없으니 걱정 말라"며 협력자 김씨에게 증거 위조를 지시했다는 것이 검찰 설명이다. 김 과장은 인터넷 팩스 발송 시스템을 사용해 국정원 사무실에서 중국 선양총영사관에 팩스를 보내놓고는 중국 허룽(和龍)시 공안국이 보낸 것처럼 속였다고 한다.
이번 사건은 국정원의 대공(對共) 수사 실력이 어떤지 여실히 보여줬다. 남한에 온 탈북자 수가 2만6000명쯤 된다. 그 가운데는 탈북자를 가장한 남파 간첩도 극히 일부지만 있을 것이다. 남파 간첩 중에는 구체적인 임무(任務) 없이 '일단 남한에 정착해 기다리라'는 지시만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거짓말 탐지기를 속이기 위한 집중 훈련도 받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간첩을 적발해 내려면 혐의자 주변에 감시망(監視網)을 촘촘히 짜놓고 몇 년이 걸리더라도 끈질기게 추적하면서 증거를 확보하는 수밖에 없다. 국정원이 간첩으로 지목한 유우성씨는 2006년 5월 27일 중국에서 북한에 들어갔다가 6월 10일 중국으로 나왔고 그 14일 동안 북한 공작 기관에 의해 대남 간첩으로 포섭당했다는 것이 국정원 주장이다. 국정원 말대로라면 유씨는 2주일밖에 안 되는 기간 동안 속성(速成) 간첩 훈련을 받은 사람이다.
국민은 국정원이라면 최고급 정보와 첨단 과학기술, 최고의 수사 기법을 활용해 간첩 혐의자에 대해 옴짝달싹 못하는 증거를 확보한 후 신병을 확보해 자백을 받아낼 것으로 생각해왔다. 그러나 국정원 대공수사팀은 단기 훈련을 받은 C급도 안 될 듯한 간첩 혐의자를 수사하면서 증거를 위조하는 일까지 저질렀다. 우리 사회에는 신분을 완벽하게 은폐하고 요소요소에 자리 잡은 뒤 특수 임무를 수행하는 A급 간첩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에서 보여준 국정원의 실력을 갖고 이런 A급 간첩들의 냄새라도 맡을 수 있을지 걱정이다.
지난달 22일 자살을 기도한 국정원 권모 과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증거로 확보한) 문건의 실체는 믿음이다. '김 과장이 구했으니 진짜일 것'이라는 믿음이다"고 했다. 생명의 위협도 감수하는 대공수사팀의 직원들 사이에 이런 동지적 신뢰 관계가 형성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적어도 중국 정부가 "문건은 위조"라고 발표한 다음에는 국정원 지도부가 서둘러 관련 증거들을 처음부터 다 새로 검토해봤어야 했다. 대한민국 국정원은 그런 냉철함도 보여주지 못했다. 국정원 조직이 자기들끼리의 믿음에 사로잡혀 밖에서 돌아가는 사태를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는 폐쇄회로 속에 갇혀 있을 가능성이 높다. 국정원은 이번 증거 위조 사건을 잘못 처리하면 국정원의 존립(存立) 문제마저 거론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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