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원통한 죽음을 당했을 때 슬픔에 잠겨 있는 유족들에게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이런저런 대책을 세워주겠다거나, 보상금을 얼마나 주겠다거나 하는 따위가 아니다. 망자가 죽음에 이를 때까지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났으며, 죽음을 둘러싼 시간과 공간에 어떤 행위가 개입됐는지 하나도 빠짐없이 낱낱이 밝히는 일이야말로 망자의 신원(伸寃)과 유족의 치유를 위한 첫걸음인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세월호 참사 유족들이 “철저한 진상규명이 아이들과 우리들을 치유할 수 있다”고 밝힌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피해자 가족들은 지난 주말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추모 촛불집회에서 “생존 학생들은 사고 당시 자기 발목을 잡은 친구들을 놓친 것을 아직도 생각하며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면서 진상규명을 거듭 촉구했다. 유족들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사고 발생 40일이 지났지만 참사의 실체적 진실 가운데 의문부호가 찍혀 있는 것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제때에 선내 진입을 했더라면 탑승자 대부분을 살릴 수 있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은 사정은 과연 무엇이었는지,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 유관기관들이 시간대별로 어떤 조처를 취했는지, 구조에 중대한 혼선을 초래했다는 ‘전원 구조’라는 최악의 언론 보도는 어떤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는지 등 열거하려면 끝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미 발표를 해버렸지만 사실 해양경찰청 해체나 국가안전처 신설 등의 ‘대책’은 진상규명을 매듭짓고 충분한 토론과 여론의 수렴을 거친 뒤에 마련해도 늦지 않은 것이었다. 사고 직후 언론에 의해 여러번 지적됐지만 미국이 9·11테러 이후 보여준 모습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에도 소중한 전범이 될 만하다. 당시 미국은 연방수사국(FBI)과 중앙정보국(CIA)의 자체 조사 외에도 정파를 초월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무려 20개월 동안 사건과 관련된 모든 사실관계, 정황, 대책 등을 치밀하게 조사한 뒤 600쪽에 이르는 방대한 종합보고서를 만들었다. 현직 대통령도 조사대상에 포함됐으며, 당연히 성실하게 조사를 받았다.
이번 세월호 사고에 책임이 있는 몇몇 관계자들을 처벌하고, 새로운 기관이나 제도 몇 개 만들고, 유족들에게 적당히 경제적 보상을 하는 것으로 이 엄청난 국가적 재앙을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그래서도 안되고 결코 그렇게 되지도 않을 것이다. 정부가 뒤늦게나마 자신의 책무를 다하려면 먼저 철저한 진상규명에 최우선 순위를 둬야 한다. 조사 대상에 성역과 제한이 없어야 하며, 사건과 관련된 모든 정보도 공개돼야 함은 물론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참고: 블로그의 회원만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