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대희 총리 후보자가 어제 전격 사퇴했다. 거액의 전관예우 논란에 휩싸이면서 더 이상 국회 인사청문회 벽을 넘기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터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이후 공직사회 개혁을 추진할 간판으로 내세운 안 후보자가 지명 엿새 만에 낙마함에 따라 심대한 타격을 받게 됐다. 박근혜 정부 출범 당시 김용준 총리 후보자가 부동산 투기·전관예우 등에 걸려 사퇴한 데 이어 두 번째다. 한 정부에서 총리 후보자가 2명씩이나 도덕성 문제로 사퇴한 것은 초유의 일이다.
안 후보자의 사퇴는 사필귀정이다. 안 후보자가 전관예우로 벌어들인 수입은 지난해 5개월 동안에만 16억원에 달한다. 역대 인사청문회 사상 최고의 액수다. 안 후보자가 변호사 수입 중에서 냈다는 기부금 3억원은 총리 지명 직전에 한 것으로 드러나 ‘기획 기부’ 의혹까지 샀다. 안 후보자는 변호사 활동으로 증식한 재산 11억원의 사회환원 카드로 여론을 무마하려 했으나, 애초 ‘사후 기부’를 한다고 해서 전관예우와 과다 수임료 문제가 해소될 성질은 아니었다. 외려 ‘5개월 수입 11억원으로 총리직을 거래하려 한다’는 비판을 자초했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이 새로운 총리의 최우선 소임으로 지목한 것이 민관유착 적폐 척결과 공직사회 개혁이다. 민관유착의 원조가 전관예우이다. ‘황제 전관예우’ 소리를 듣는 순간 안 후보자는 그 소임을 맡을 자격을 잃었다.
안 후보자의 낙마는 다시금 박 대통령의 인사 실패를 보여주었다. 공직사회 개혁과 ‘관피아’ 척결의 적임자로 안 후보자를 인선했다고 했지만, 기본적인 전관예우 문제조차 간과했다. ‘5개월 16억원’을 몰랐다면 인사 검증의 기초 자체가 붕괴된 것이다. 전관예우 사실을 알고도 총리로 지명했다면 국민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는 ‘인사 기준’ 자체가 잘못된 결과다. 안 후보자가 총리 지명 직전에 수입의 일부를 기부한 사실을 감안하면 본인은 물론 청와대 역시 전관예우와 과다 수임료 건을 인지했다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총리 지명을 강행했다. 오만한 것이다. 청와대의 인사검증시스템도 문제지만, 근인은 상식적 잣대에 동떨어진 박 대통령의 ‘인사 기준’에 있는 것이다. 인사 실패를 막으려면 박 대통령의 인사 기준부터 바뀌어야 한다.
안 후보자의 낙마로 국정의 파행이 불가피해졌다. 내각과 청와대 개편 일정도 차질이 생기게 됐다. 박 대통령은 총리 인선을 세월호 국면 돌파, 지방선거를 겨냥한 분위기 반전용으로 삼고자 하는 유혹을 떨쳐내야 한다. ‘세월호 이후’를 이끄는 데 필수적인 통합과 화해에 방점을 두고, 능력과 도덕성을 갖춘 총리 후보를 찾기 바란다. 지역과 직군(법조인)의 집착을 털고, 범야권까지를 아우르는 열린 틀에서 널리 사람을 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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