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이후 온 사회가 비탄에 잠겼다. 집단 트라우마를 겪고 나면 안전의식이 나아져야 순리다. 하지만 연이은 사고를 보면 우리 사회에 ‘안전의 역설’이 작동하는 것 같다. 안전의식과 행동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 최근 안전행정부가 전국의 다중이용시설 승강기를 조사한 결과 총 684건의 설비 결함 등이 확인됐다. 기업·기관이 세월호의 교훈을 안전점검 실천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며칠 전 부산 물류창고에서 발생한 화재 역시 위험천만한 사고였다. 부탄가스와 화공약품이 1시간 동안 폭발하면서 건물 6동을 순식간에 삼켰다. 다행히 퇴근 후여서 희생자가 없었다.
안전불감증의 압권은 세월호 참사 보름 뒤 터진 서울지하철 추돌사고였다. 마침 고양터미널 화재가 발생한 26일, 경찰이 수사 결과를 내놓았다. 발표 내용은 안전불감증의 결정판을 보는 듯하다. 서울메트로 직원들이 신호시스템 오류를 알고도 보고하지 않았으며 현장 수리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한심한 수준이었다면 더 큰 참사가 언제든지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안전사고를 막으려면 마땅히 들여야 할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낡은 시스템도 바꾸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악의 수준인 산업재해 사망률이 단적인 예다. 근로자 1만 명당 사망자 수가 선진국 평균의 5배 수준이다. 대기업은 위험한 작업을 싼값에 하청업체에 넘기고 하청업체는 안전관리 없이 작업을 서두르다가 ‘용접 중 화재’같은 원시적인 사고가 터지는 구조다.
안전의 구조적 문제야말로 국가 개조 차원에서 뜯어고쳐야 할 사안이다. 비용 지불과 시스템 개편에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 전이라도 모든 부문에서 각자가 ‘대충대충’ 관행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세월호 이후 안전 염려증은 커졌지만 그 걱정이 실천으로 옮겨가지 않고 있다. 참사의 행렬을 멈추게 하려면 안전의 ‘나사’를 단단히 조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월호 이상의 초대형 재난이 또 터질 수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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