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25일 일요일

경향_[사설]‘검찰 공화국’으로의 퇴행을 경계한다

국무총리와 청와대 비서실장은 국정운영의 ‘투 톱’이다. 지난해 8월 김기춘 비서실장이 취임하면서 박근혜 정부의 투 톱 모두 전직 검사들 차지가 됐다. 정홍원 총리가 낙마했음에도 ‘검사 출신 투 톱 체제’는 건재하다. 후임자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을 지낸 안대희 전 대법관이 지명됐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앞서 국가정보원 2차장에 김수민 전 인천지검장, 청와대 민정비서관에 우병우 전 대검 수사기획관을 기용한 바 있다. 참으로 걱정스러운 풍경이다.

검사는 법과 논리를 앞세워 범죄자를 단죄하는 직무 속성상 소통과 협치, 갈등 조정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정무적 판단에 필요한 유연성이나 창조적 발상도 상대적으로 뒤떨어진다. 지금은 세월호 참사로 온 국민이 깊은 상처를 입은 시기다. 경청과 공감의 리더십이 절실한 터에 ‘특수통’을 앞세운 사정 드라이브가 웬 말인가. 검찰은 또한 상명하복이 철저한 조직이다. 권력 내부에서 특정인의 전횡이나 부패를 막으려면 상호 견제가 필수적인데, 검사들끼리 모아놓았다가는 견제의 원리가 작동하기 어렵다. 안 총리 지명자는 김 실장이 검찰총장을 지낼 때 서울지검 검사였다. 건전한 견제보다는 ‘총리 위에 왕실장’ 체제가 공고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검찰과 권력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검사 출신이 권력의 핵심에 진입할수록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검찰의 칼날은 무뎌지게 된다.

박근혜 정권 출범 초기에는 국정원이 정권 보위 역할을 도맡다시피 했다. 그러나 대선개입과 간첩 증거조작이 드러나면서 국정원의 입지는 현저히 축소됐다. 이제는 국정원 대신 검찰이 정권 보위의 전위대로 나선 듯하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을 뒷조사한 청와대에 면죄부를 주더니, 최근에는 관피아(관료 마피아) 청소를 위한 대대적 ‘하명 수사’에 돌입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노태우 정권이 들어서자 그 이전까지 정권 유지의 주축이던 군과 안기부는 뒤로 물러섰다. 그 대신 검사 출신이 요직에 줄줄이 오르면서 ‘검찰 공화국’이란 말이 회자되기 시작했다. 검찰 공화국의 대표적 공안조작 사건이 지난 2월 재심에서 무죄가 난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이다. 당시 법무부 장관이 김기춘 현 비서실장이란 점은 시사적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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