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남재준 국정원장,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이 경질된 지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북한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이남에 2발의 포를 쏘았다. 포탄은 경계 임무 중이던 경비함에서 불과 150m 거리에 떨어졌다. 하마터면 경비함이 포격을 당할 수도 있는 근접거리였다. 이 두 사건, 즉 두 사람의 경질과 남북 간 일촉즉발의 군사적 대치는 얼핏 아무 관련이 없는 별개의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박근혜 정부의 외교 안보 실패를 상징하는 하나의 현상이다.
남 전 원장은 안보 문제를 국내 정쟁의 불쏘시개로 이용한 장본인이다. 그는 남북정상 회의록을 무단으로 공개, 여야 간 소모적 대결을 부추김으로써 국정원을 정치화하는 데 앞장섰다. 그리고 멀쩡한 사람을 간첩으로 몰기 위해 증거를 조작, 국가기관의 신뢰를 땅에 떨어뜨리고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식 문제의 뒷조사를 지원한 책임이 있다. 그는 이미 오래전에 정보기관을 이끌 도덕성과 정당성을 상실했다.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장을 겸한 김 전 실장은 외교 안보 사령탑으로서 국정원 문제는 물론 남북관계를 군사적 긴장 상태로 악화시킨 책임이 있다.
그러나 청와대는 두 사람의 경질 이유를 따로 설명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두 사람이 마치 세월호 참사 대응 실패의 수세 국면 탈출을 위해 정치적으로 희생된 듯한 인상까지 주고 있다. 특히 김 전 실장은 “국가안보실이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는 실언 한마디로 야당 공세에 밀려 어쩔 수 없이 던진 카드처럼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그의 경질이 외교 안보 실패에 대한 책임을 덮는 결과가 되어서는 안된다. 만일 청와대가 두 사람의 경질을 외교 안보 정책과 무관한 것으로 몰고 간다면 외교 안보 정책을 바로잡을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박 대통령은 외교 안보의 책임자인 국가안보실장·국정원장·국방장관을 육사 출신 선후배들에게 나눠주는 인사를 두 번 다시 반복해서는 안된다. 그들은 언제 어디서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오늘날의 상시적 안보 불안 상황을 방치한 책임이 있다. 그제 확연히 드러났듯이 남북은 군사적 대결로 향해 내달리는 위기 국면에 처해 있다. 군 출신 외교안보팀의 경직성으로 인해 이런 위기를 극복하는 데 실패했다면 박 대통령이 군장성들에 계속 집착할 이유가 없다.
국정원장에는 국정원을 완전히 뜯어고칠 수 있는 개혁적 인물을 골라야 한다. 국가안보실장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맞대결을 하는 남북 대결 상태를 벗어나려는 의지, 창의성, 전략적 사고를 지닌 인물이어야 한다.
그런 인사를 통해 안보 정책에 대한 문민통제를 회복해야 한다. 남북대화와 화해는 군인들에게 맡기기에는 너무 막중한 문제이다. 마침 오늘 5·24 대북 제재 조치 4주년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두번째 맞는 5·24이기도 하다. 남북 단절은 이제 군사적 충돌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이 위기를 끝내기 위한 정책 전환과 그것을 해낼 인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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