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29일 목요일

경향_[사설]온몸을 던져 대형 참사 막은 역무원과 시민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 여객선 세월호 침몰, 고양종합시외버스터미널 화재, 장성 효실천사랑나눔요양병원 화재…. 최근 100여일 동안 연이어 일어난 대형 참사의 공통점은 ‘원시적 안전사고’이자 ‘총체적 인재(人災)’라는 것이다. 그때마다 온갖 문제점과 개선의 목소리가 나오지만 사고는 또 터지고 문제점과 개선점에 대한 지적도 판에 박은 듯이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 다만 그제 일어난 서울 지하철 3호선 전동차 방화 사건은 전혀 달랐다. 192명이 사망한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와 똑같은 방화가 시도됐지만 단 한 명의 희생도 발생하지 않았다.

‘제2의 대구 지하철 참사’를 막은 일등공신은 서울메트로 매봉역 역무원 권순중씨와 여성 승객이라고 할 수 있다. 방화범이 전동차 바닥에 시너를 쏟고 라이터로 불을 붙이는 것을 목격한 권씨는 주변 승객들에게 비상벨을 눌러 기관사에게 신고해 달라고 부탁하고 소화기로 직접 진화에 나섰다. 범인이 불을 끄는 것을 방해하고 두 차례 더 불을 질렀지만 그는 몸싸움까지 해가며 끝까지 진화를 계속했다. 한 여성 승객도 마스크를 쓰고 소화기를 그에게 건네주며 화재 진압을 도왔다. 그렇게 하는 사이에 비상통화장치를 통해 승객의 신고를 받은 기관사는 관제실에 화재 발생 사실을 알렸고, 도곡역에 열차를 세워 370여명의 승객을 무사히 대피시킬 수 있었다.

전동차 내부의 불연·난연성 소재도 불길이 크게 번지는 것을 막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지하철 전동차 내·외부가 대구 지하철 참사 이후 모두 불연재로 교체된 덕분이다. 그 결과 범인이 시너 11ℓ와 부탄가스 4개 등 인화물질을 대거 준비해 전동차 내 방화를 시도했지만 스테인리스와 난연 섬유로 제작된 의자와 합성고무 바닥만 그을렸을 뿐 큰불로 이어지지 않았다. 

역무원과 승객의 빠른 초동대처와 용기 있는 행동, 기관사 등의 차분한 승객 대피 안내, 불연·난연성 소재 사용 등은 안전의 기본 사항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기본을 지키는 것이 대형 참사를 막는 평범한 비결인 것이다. 서울 지하철 3호선 전동차 방화 사건이 세월호 침몰사고를 비롯한 최근의 대형 참사와는 다른 점이자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온 까닭이기도 할 것이다. 일어나선 안될 사고가 대형 참사로 이어진 ‘세월호형’ 사건과 정반대로 대형 참사가 될 뻔한 사고를 막은 이번 ‘반(反)세월호형’ 사건을 교훈 삼아 대한민국 안전의 길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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