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행이 23일 전산 시스템 교체를 둘러싼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긴급 이사회를 열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국민은행 이사회는 지난달 이건호 국민은행장이 반대하는 데도 사외이사 중심으로 전산 시스템을 기존 IBM에서 유닉스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이에 이 행장은 재검토할 것을 주장하고, KB금융지주는 은행 이사회 결정을 지지하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과 이 행장이 주도권 다툼을 벌이는 꼴이다.
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 간의 알력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국민은행을 모태(母胎)로 2008년 만들어진 KB금융지주는 출범 때 초대 회장 자리를 놓고 경쟁하던 사람들이 회장과 은행장이 된 뒤 사사건건 부딪쳤다. 국내 첫 금융지주인 우리금융지주에서도 회장과 은행장 간의 갈등설(說)이 끊이지 않고 있다.
금융지주 제도가 2001년 도입된 것은 은행, 보험, 증권, 자산운용 등 다양한 금융사를 하나의 우산 아래 포진시켜 금융그룹을 균형감 있게 대형화하자는 취지였다. 1998년 미국 시티은행의 지주회사인 시티코프가 4대 보험·증권그룹인 트래블러스와 합병해 세계 최대 금융그룹으로 부상한 것을 모델로 했다. 문제는 국내 금융지주에 은행이 전체 자산의 80%를 차지할 정도로 쏠림이 크다는 데 있다. 그래서 금융지주 회장이 은행에 관심을 쏟을 수밖에 없고, 은행장이 여기에 반발하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회장과 행장이 서로 다른 줄을 타고 '낙하산'으로 내려올 경우 갈등이 더 증폭될 수밖에 없다.
금융지주의 경영 성과도 좋지 않다. 작년 4대 금융지주의 순익은 전년보다 40% 정도 줄었다. 올 초 카드사 정보 유출 때는 국민은행 등 금융지주 소속 다른 계열사 고객 정보가 함께 빠져나가는 문제를 드러내기도 했다. 금융지주 체제가 당초 내세웠던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고 회장과 행장의 싸움터로 변질된 것이다. 미국 시티그룹은 2008년 대규모 구제금융을 받은 후 대형화·겸업화를 포기하고 다시 전통적인 상업은행으로 돌아갔다. 우리도 금융지주에 대한 근본적인 개편 방안을 논의할 때가 됐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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