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불법 유출한 혐의로 약식기소된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이 직접 법정에 서게 됐다. 어제 서울중앙지법은 “공판절차에 의한 신중한 심리가 필요해 약식명령이 적절치 않다”며 정 의원을 정식 재판에 회부했다. 검찰은 회의록 유출 사건 관련자 중 정 의원만 벌금 500만원에 약식기소하고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과 권영세 주중대사 등은 모두 무혐의 처분해 ‘정권 봐주기’라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법원은 그러나 검찰 결정을 뒤집고 정 의원을 정식 재판에 넘김으로써 회의록 유출 사건 수사가 부실·축소수사였음을 사실상 인정했다. 권력 앞에만 가면 작아지는 검찰의 행태에 사법부가 제동을 건 것이다.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방향”으로 결론냈다고 한 검찰은 이제 뭐라고 할 텐가.
검찰은 지난 대통령 선거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측이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내용을 불법 입수해 조직적으로 활용한 사실을 확인했다. 국회의원이 국가기밀을 빼돌려 색깔론까지 덧칠해 선거에 활용한 것은 최악의 국기문란 범죄로 봐야 마땅하다. 외교관례상으로도 정상 간 회담 내용을 특정 정파의 정략에 따라 공개한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검찰은 기밀 누설자에게 ‘사안이 경미하다’며 500만원만 내면 된다고 했고, 기밀을 들은 뒤 선거운동 소재로 쓴 이들에겐 ‘공무상 얻은 비밀이 아니다’라며 불기소 처분했다. 공익의 대표자라는 검사들이 온갖 억지 논리를 동원해가며 국가기밀을 불법 선거운동에 활용할 수 있는 길을 터준 격이니 어처구니가 없다. 납득하기 힘든 검찰의 결정이 법원 판단으로 일부나마 바로잡힌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정 의원에 대한 재판을 통해 회의록 유출 사건의 진상이 명확히 밝혀지기를 기대한다. 김무성 의원 등 다른 관련자들에 대해서도 재정신청이나 특검을 통한 재수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김진태 검찰’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을 뒷조사한 청와대에 면죄부를 준 것이 엊그제 일인데, 이번에는 정상회담 회의록을 불법으로 유출한 여당에 면죄부를 선물하려다가 망신살이 뻗치지 않았는가. 시민에게서 위임받은 권한인 기소권을 마치 자신의 전유물인 양 멋대로 휘두르다 벌어진 참사라고 본다. 최근 검찰이 보여준 행태는 기소권을 분산하고 시민의 통제를 강화하는 일이 검찰개혁의 요체임을 다시 한번 실감케 한다. 정치검찰, 이제 더 이상은 방치할 수 없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참고: 블로그의 회원만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