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올 1~5월 발행한 5만원권 가운데 한은에 되돌아온 것은 100장 중 28장꼴에 불과했다. 작년에 100장에 49장꼴로 한은에 환수(還收)되던 비율이 훨씬 떨어진 것이다. 한은으로 돌아오지 않은 5만원권은 개인 금고나 장롱 속으로 퇴장(退藏)된다는 분석이 많다.
정기예금 평균 금리는 작년 초 이미 연 2%대로 떨어졌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대 이하인 저물가 국면도 1년 7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저금리·저물가 시대가 장기화하면서 푼돈 이자를 받는 것보다 차라리 현금으로 보관하겠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작년부터 금융소득 종합과세 기준이 40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낮아진 이후 거액 예금 보유자들에게는 14%의 이자소득세가 아니라 최고 38%의 종합소득세를 부과하고 있다. 이 때문에 예금을 현금으로 돌리는 흐름이 형성되면서 작년도 정기예금은 8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했다. 계좌당 5억원이 넘는 거액 정기예금도 14조원이나 줄었다.
일본에선 저금리에 물가 하락이 겹쳤을 때 금고에 현찰을 보관하는 '장롱 예금'이 크게 늘어나는 일이 있었다. 1993년 5조엔에서 2008년 30조엔으로 6배 커졌다. 당시 일본인들은 현금을 쌓느라 지갑을 닫고 소비를 줄였다. 주식·부동산 가격은 폭락했다. 일본 정부가 뒤늦게 세금을 낮춰주고 저소득층에 상품권을 지급하는 등 내수(內需) 진작에 나섰지만 장기 불황을 막지 못했다.
우리가 일본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현금이 금고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하는 초기에 그 흐름을 막아야 한다. 5만원권을 양지(陽地)로 끌어내 주식이나 부동산 시장으로 흐르도록 신종 투자 상품을 만들고 각종 규제를 풀어야 한다. 금융소득 종합과세 기준을 2000만원으로 낮춘 것은 복지 정책을 추진할 재원을 마련하려는 조치였다. 그러나 복지 비용을 충당하려다가 경기가 죽으면 결국 복지 정책도 계속 밀고 가기 힘들게 된다. 지금의 금융소득 종합과세 기준이 우리 현실에 적정한 수준인지 재검토해봐야 한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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