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30일 수요일

중앙_[사설] 박 대통령의 국가안전처, 과연 안전한가

박근혜 대통령이 ‘4·16 참사’에서 드러난 정부 대처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정부조직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제 국무회의에서 “국가 차원의 대형사고 때 지휘체계에 혼선이 발생하지 않도록 총리실이 관장하면서 부처 간 업무를 총괄조정하고 지휘하는 가칭 국가안전처를 신설하려고 한다”고 말한 것이다. 세월호 조난 사건을 수습하면서 정부 각 기관이 따로 놀아 컨트롤타워가 작동하지 못했던 건 사실이고 이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것도 맞다.

 하지만 국가개조론이 나올 정도로 근본적 수술이 필요한 이 사안에 대한 대통령의 해법이 참사 발생 13일 만에 너무 졸속으로 나온 건 아닐까. 물에 잠긴 세월호 안엔 아직도 정부가 총력을 다해 구해내야 할 실종자가 90여 명 남아 있다. 무엇보다 새로운 부처의 신설 같은 정부조직 개편은 4·16 참사에 대한 종합적이고 객관적이며 치밀한 사태 파악이 진행된 뒤 최종 단계에서 제시되어야 한다.

 청와대를 포함해 모든 정부 부서가 허둥대는 기색이 역력한데 박 대통령의 국가안전처 신설안은 어떤 과정과 절차, 준비를 거쳐 마련됐는지 궁금하다. 4·16 참사를 통해 우리는 정부의 재난 대처 능력을 더 이상 믿을 수 없다는 유감스러운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다면 재난에 대비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짜는 과정도 정부에만 맡길 수 없다는 민심을 박 대통령은 알아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역사는 2001년 발생한 9·11테러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2900여 명이 사망한 이 재난에 대해 당시 부시 대통령 정부는 1년6개월간 전문가 조사와 의회의 논의, 국민적 여론을 수렴한 뒤 국토안보부란 새로운 정부 조직을 신설했다. 국토안보부는 연방과 지방정부, 공공기관에 흩어졌던 숱한 테러·재난·안전 조직을 통합하고 지휘체계를 일원화하여 미 정부에서 국방부 다음으로 강력한 기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예산이 370억 달러, 직원이 18만 명에 이른다. 의회는 의회대로 초당적인 9·11위원회를 만들어 뉴욕 소방관에서 부시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관계자에 대한 공식·비공식 청문회를 열어 수만 페이지에 달하는 보고서를 만들었다.

 미처 피지 못한 고교생 250명이 어른들의 잘못으로 희생된 4·16 참사를 겪으면서 한국의 역사도 4·16 이전과 이후로 나뉘게 될 것이다. 4·16 참사의 상황파악과 원인규명, 대처방안은 정부뿐 아니라 야당을 포함한 국회, 민간의 전문가, 언론, 시민사회가 모두 참여하는 광범위한 민관 거버넌스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국민적 합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박 대통령은 야당 대표와 만나기를 꺼려선 안 된다. 박 대통령은 행정부 수반으로서가 아니라 국가원수의 입장에서 정치권과 민간의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대통령의 고뇌 어린 홀로 결단의 방식은 4·16 재난 문제에 관한 한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나홀로 결단 방식으로 제시된 국가안전처 신설안이 과연 안전한지를 묻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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