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1일 목요일

경향_[사설]출동한 소방헬기 돌려세워 탑승한 공직자들

재난사고가 났을 때 초기대응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사고 내용에 따라 다소 다르지만 대개 발생 후 30분~1시간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보내느냐에 구조의 성패가 달려 있다. 이 시간을 골든타임이라 부르는 이유다. 구조망이 가동되고 난 뒤에는 잘 짜인 톱니바퀴처럼 체계적으로 돌아가야겠지만 그보다 선행돼야 하는 것은 신속한 현장 출동이다. 사고가 접수되면 1분, 1초의 낭비도 없이 현장으로 곧장 달려가는 것은 구조대가 가진 제1의 원칙이고 사명이다.

세월호 사고에서 초기대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이유 중 하나로 소방당국의 출동 지연 문제도 있다. 소방본부는 학생들로부터 119 신고전화를 여러 통 받아 세월호 위기상황을 다른 어떤 기관보다 먼저 알 수 있었다. 신고 접수 직후 소방헬기를 띄워 현장으로 달려가는 것은 만사를 제쳐놓고 해야 할 소방본부의 최우선 임무다. 실제 전남도 소방헬기 두 대 중 한 대는 그날 오전 9시10분쯤 정비사와 구조대원을 태우고 사고해역으로 첫 출동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다른 한 대의 헬기는 10시40분쯤 영암의 소방항공대에서 이륙했다가 무안군 전남도청 앞 헬기장에 일시 착륙, 박준영 전남도지사를 태우고 진도로 향했다. 이 때문에 사고해역에 도착하기까지 20분가량을 더 잡아먹었다. 1분, 1초가 급한 때 인명구조와 직접 관련이 없는 공직자 이동편의 제공에 시간을 허비한 것이다.

광주시 소방헬기는 출동 중 “태워 가야 할 분이 있으니 돌아오라”는 지시를 받고 항로를 변경해 돌아오기까지 했다. 그렇게 해서 김영선 전남도 행정부지사와 박청웅 전남도소방본부장을 태우고 다시 이륙하느라 30분이면 갈 진도해역에 53분이 걸려서야 다다를 수 있었다. 헬기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세월호가 거의 물에 잠긴 상태였다. 헬기에는 구조대원도 타고 있었지만 배 안으로 진입하는 등의 구조활동은 시도조차 못하고 공중에서 선회하다가 돌아갔다는 것이다.

소방본부 측은 “헬기는 해경의 통제를 받기 때문에 사고현장에 조금 일찍 도착했더라도 구조작업에는 참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하지만 군색한 변명이다. 해상안전이 해경 소관인 만큼 해경과 긴밀하게 공조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인명을 구조하는 일에 기관별 차등이 있을 수 없다. 누구든 현장에 빨리 도착하면 상황을 더 잘 파악할 수 있고, 따라서 할 수 있는 일도 많아지는 법이다. 공직자들의 소방헬기 탑승이 못내 유감스러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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