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30일 수요일

경향_[사설]섣부른 ‘국가개조론’을 경계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의 수습책으로 ‘국가개조론’을 제시했다. 박 대통령은 그제 국무회의에서 “과거로부터 이어온 잘못된 행태들을 바로잡고 새로운 대한민국의 틀을 다시 잡을 것”이라며 “내각 전체가 모든 것을 원점에서, 다시 ‘국가개조’를 한다는 자세로 근본적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당부했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도 “우리 국민은 지금 하나가 돼 있다. 이 힘으로 대한민국호를 개조해야 한다”고 호응했다.

세월호 참사가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취약성을 드러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허약한 공동체의 시스템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법과 제도 개선이 필요하고, 대대적 인적쇄신도 절실하다. 국가개조론이라는 화두 또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나왔을 것으로 믿고 싶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섣부르다. 더욱이 정국 돌파용 ‘카드’로 집어든 것이라면 또 다른 죄를 짓는 일이 될 터이다.

국가개조론은 현시점에서 사태의 본질을 흐리고 초점을 분산시킬 뿐이다. 사고 발생 보름이 지나도록 차가운 바닷속에 있는 실종자와 그들을 기다리는 가족을 생각하면 어떠한 미사여구도 무의미하다. 실종자들이 하루라도 빨리 가족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구조·수색에 박차를 가하는 게 최우선이다. 그런 연후 진실을 밝히는 단계로 가야 한다. 사고의 원인에서부터 발생과 수습에 이르기까지 한 점 의혹도 남지 않도록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진실이 드러난 뒤에는 책임자를 엄중히 처벌함으로써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 시민들이 저마다 부끄러워하는 것은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나라 전체가 문제이지 누구를 탓하겠느냐는 식으로 흘러선 곤란하다. ‘모두가 죄인’일 수 있으나 분명히 ‘더 큰 죄인’은 있다. 이른바 국가개조론은 ‘더 큰 죄인’들의 책임을 가리는 방패막이로 전락할 수 있다. “과거의 적폐를 바로잡지 못해” 참사가 일어났다는 박 대통령의 인식을 보라. 국가개조론의 밑바닥에 책임회피 의도가 있는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

박 대통령의 국가개조론은 또한 정권이 공직사회와 시민을 개조의 ‘대상’으로 바라본다는 측면에서 오만하고 위험한 발상이다. 박 대통령은 국가개조를 강조하면서도 자신과 청와대의 ‘개조’는 언급하지 않았다. 국정을 책임지는 주체가 대통령과 청와대인데, 거기엔 눈감고 공무원과 시민만 바꿔놓겠다는 건가. 예컨대 공공기관의 ‘친박 낙하산’들을 그대로 놔둔 채 ‘관피아(관료 마피아)’ 척결을 외친다면 어느 누가 따르겠는가. 지금은 ‘국민 동원’을 일상화하던 1970년대 권위주의 정권 시절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박 대통령이 진심으로 대한민국의 변화를 바란다면, 자신과 청와대 참모진부터 ‘대개조’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 출발점은 미증유의 참사를 과거 정권 탓으로 돌리는 대신 통렬히 자성하는 일이 돼야 할 것이다. 300명이 넘는 실종자 중 단 한 명도 구하지 못한 정권이 국가를 개조하겠다니 허망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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