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홍원 국무총리가 어제 세월호 침몰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사의를 수용하되 수리 시기를 사고 수습 후로 미뤘다’고 한다. 세월호 사고 구조작업과 수습이 한창 진행 중인 와중에 총괄 책임을 지고 있는 국무총리가 사퇴 선언부터 한 것을 두고 “무책임하고 비겁한 회피”라는 비판이 일자 ‘사표 수리 연기’라는 꼼수를 택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애초 정 총리의 사퇴 표명은 시기, 내용, 목적 모두에서 잘못되고 무책임한 것이다. 정 총리 스스로 기자회견에서 밝혔듯 “하루빨리 구조작업을 완료하고 사고를 수습할 때”에, 범정부사고대책본부장을 맡고 있는 총리가 물러나겠다고 한 것 자체가 당착적이다. 아직도 어둡고 차가운 바닷속에 남은 114명 실종자의 생사 확인조차 못한 상태다. 정 총리의 사퇴 표명 소식에 희생자 가족들이 “사람이나 구하고, 어떻게 수습할지 대책이라도 내놓고 사퇴할 거면 하라”고 분개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총리의 돌연한 거취 표명은 희생자 가족의 심정을 헤아리지 않은 경솔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정 총리는 “더 이상 자리를 지킴으로써 국정운영에 부담을 줄 수 없다는 생각에 사퇴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세월호 사고 대처 과정에서 드러난 정부의 총체적 실패로 인해 불붙은 분노한 민심이 박 대통령으로 향하는 것을 방어하기 위한 국면전환용으로 사퇴 카드를 꺼냈다고 보여지는 대목이다. 그러나 정 총리의 사과와 사의 표명으로 국면을 전환할 수 있을 것이라 여긴다면 국민을 너무 우습게 보는 일이다. 물론 세월호 사고 예방과 사고 발생 때 대응, 수습 과정에서 드러난 총체적인 정부 실패에 대한 인적, 제도적 책임 조치는 응당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총리 한 사람의 사퇴로 끝날 일도 아니다. 내각과 청와대를 막론하고 전면적인 쇄신은 필수적이다. 다만 그 단죄와 책임은 구조작업과 사고 수습을 마무리한 다음의 일이다.
이제 세월호 희생자 가족과 국민들은 과연 이 정부가 사고를 수습할 능력과 의지를 갖고나 있는지 극도의 불신을 갖고 있다. ‘사퇴 소동’까지 일으킨 정 총리가 과연 구조작업과 수습을 총괄하는 범정부사고대책본부장으로서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지부터가 의문이다. 국정의 최고책임자인 박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국민에게 진정어린 사과를 하고, 사태를 수습할 의지와 책임을 보여주어야 한다. 언제까지 총리의 ‘대리 사과’와 ‘대리 사퇴’ 뒤에 숨어서 대통령이 감당해야 할 책임과 상황을 모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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