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이 세월호의 대참사를 두 눈으로 보고도 안전 규정을 무시하고 여객기를 운항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지난 19일 승객 240여명을 태운 여객기가 인천공항을 떠나 사이판으로 가던 중 이륙 1시간 만에 계기판에 ‘엔진오일 필터 이상’ 경고 메시지가 들어왔지만 조종사는 4시간가량 더 운항해 사이판까지 갔다는 것이다. 운항 규정에 따르면 이 경우 인근 공항(후쿠오카)으로 회항해야 한다. 이 여객기는 도착 후 점검 결과 왼쪽 엔진에 문제가 있어 교체했다고 한다. 승객의 피해는 없었다지만, 많은 승객의 안전을 아랑곳하지 않고 무리하게 운항한 위험 불감증의 전형적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해 7월 샌프란시스코 사고 후 민관 합동 특별점검을 받고 항공안전 종합대책을 마련해 실행 중에 있으면서도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질렀다. 더욱이 세월호가 안전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침몰한 지 4일째 되던 날이었다. 더 큰 문제는 아시아나항공이 국토교통부에 ‘경고등이 꺼져 계속 운항했다’고 허위보고까지 했다는 것이다. 아시아나항공은 규정 위반을 시인하면서도 “조종사와 관제센터의 판단에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고 해명했지만 신뢰하기 어렵다. 승객의 생명이나 안전보다 회항에 따른 손실을 고려해 운항을 강행했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국토부는 아시아나항공의 규정 위반에 대해 항공법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토부가 취할 수 있는 처분 내용은 ‘엄정하다’고 하기에는 낯이 간지러울 정도다. 조종사 자격정지 30일에 항공사 항공기 운항 정지 7일, 또는 과징금 1000만원에 그칠 뿐이기 때문이다.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던 위험천만한 비행을 한 데 대한 처벌로는 그야말로 솜방망이에 불과한 것이다.
국토부는 항공기가 다시는 안전 규정을 무시하고 운항하는 일이 없도록 철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무엇보다 규정 위반에 대한 처분 수위를 현행보다 크게 높일 필요가 있다. 규정을 한 번이라도 위반했다간 정말 큰코다친다는 말이 나올 정도가 돼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설마’하는 위험 불감증이 또 언제 도질지 모른다. 아시아나항공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 김수천 신임 사장이 취임 후 공식 기자회견에서 안전운항과 브랜드 신뢰도를 강조한 것이 불과 두 달 전의 일이다. 국토부의 솜방망이 처분보다 소비자의 불신이 훨씬 더 무섭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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