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29일 화요일

경향_[사설]진정성 의심받는 대통령의 ‘간접 사과’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발생 열나흘째인 어제서야 국민에게 사과했다.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사전에 사고를 예방하지 못하고 초동 대응과 수습이 미흡했던 데 대해 뭐라 사죄를 드려야 아픔과 고통을 위로받을 수 있을지 가슴이 아프다”면서 “많은 고귀한 생명을 잃게 돼 국민 여러분께 죄송스럽다”고 밝혔다. 자신에겐 책임이 없다는 듯이 제3자적 위치에서 이번 사태를 대해온 태도에 비춰보면 늦게나마 사과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사실 이번 사과는 정부의 부실·무능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들끓고, ‘대통령 책임론’이 비등해지자 내놓은 ‘지각 사과’이다. 늦은 만큼 피해자 가족과 국민의 고통과 슬픔을 위로할 수 있는 절실성과 진심이 따라야 했다. 한데 사과의 형식부터가 부적절했다. 국민에게 사과를 하면서 국민 앞에 서지 않고 국무회의 발언을 빌린 ‘간접 사과’는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 정작 희생자 가족과 국민들은 “국민께 죄송스럽다”는 대통령을 볼 수 없었다. 결국 ‘책임 안 지는 대통령 필요 없다’는 글 하나에 조회가 폭주해 청와대 홈페이지가 먹통이 될 정도로 폭발한 민심에 떼밀려 ‘마지못해 하는 사과’라는 인상만 두텁게 했다. 국무회의에 앞서 경기 안산시의 정부합동분향소를 찾은 박 대통령에게 “내 새끼이기도 하지만 대통령 자식이에요”라고 울부짖은 유족들과 국민들이 과연 대통령의 사과를 진심 어린 것으로 받아들일지 의문이다. 고집스레 책임을 거부하다 ‘지각 사과’를 하면서도, 유족과 국민의 상심에 공감하며 무한 책임을 느끼는 진정을 보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고 수습 대책의 방향을 제시했다. ‘공무원 질타’ 수준에선 나아간 것이다. 박 대통령은 ‘국가 개조’ 차원의 국민안전대책 마련, 무사안일의 관료주의 타파, ‘관료 마피아’ 근절, ‘국가안전처’ 신설 등을 밝혔다. 세월호 사고 대응 과정에서 제기된 문제점들로 필요한 대책이다. 하지만 ‘과거의 적폐’를 강조하면서도, 지금 가장 중요한 구조와 수습을 위해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주지 못했다. 희생자 가족과 국민을 절망케 한 사고 수습 과정에서 드러난 정부 실패의 책임을 통감하고 어떻게 고쳐서 대처하겠다는 실천적 각오를 찾기 힘들다. 여전히 ‘내 탓’을 회피하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제시한 제반 대책이 실행되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려면, 무엇보다 국민의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박 대통령의 뒤늦은 사과가 그 신뢰를 되찾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외려 정부합동분향소에서 대통령의 조화가 치워지는 불신의 골만 더욱 깊게 한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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