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號) 침몰로 300명 가까운 사망·실종자가 나온 것은 자기들 안위(安危)만 챙긴 선장과 승무원들의 이기적 행동과 미숙한 대처 때문이었다는 사실이 차츰 분명해지고 있다. 구조된 학생과 승객들은 16일 오전 침수 사고 직후 여러 차례 '밖으로 나오면 위험하니 선실에서 대기하라'는 안내 방송을 들었다고 했다. 승객들은 이 말에 따라 객실 등에서 앉아 기다리다가 대피할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다.
세월호는 침수 1시간이 넘게 지난 오전 10시쯤에야 '침몰이 임박했으니 배에서 탈출하라'고 방송했다. 그러나 어떻게 대피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안내는 없었다. 이때는 이미 선장과 일부 승무원이 배를 탈출한 다음이었다. 9시 30분쯤 맨 먼저 해경에 구조돼 10시 30분쯤 인근 팽목항에 도착한 47명 가운데 선장과 선원 10명이 타고 있었다는 것이다. 선장은 그 후 병원으로 이송돼 물리치료실에서 치료를 받으면서 바닷물에 젖은 지폐를 온돌 침상에 말리는 장면이 목격됐다. 세월호엔 구명보트·구명뗏목 46개가 있었다. 승무원들이 핀을 뽑은 후 바다에 걷어차 넣기만 하면 자동으로 팽창해 승객들을 태울 수 있는 장비다. 하지만 사고 후 제대로 작동한 것은 1개뿐이었다.
침수 시작 30분쯤 지난 후엔 배가 50도 이상 기운 상태였다. 선실에 있던 학생과 승객들이 뒤늦게 빠져나오려 했어도 전기가 나가 깜깜한 데다 가파른 통로를 간신히 기어오른다 해도 바깥쪽으로 밀어야 하는 철문을 열기 힘들었을 것이다. 배의 구조를 잘 아는 승무원들 안내가 아니면 탈출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러나 승무원들은 자기들부터 살겠다고 배를 빠져나갔다.
1912년 4월 빙산에 부딪혀 침몰한 타이태닉호(號) 사고 때는 승객·승무원 2224명 가운데 32%인 710명이 구조됐다. 타이태닉의 선장은 배 침몰 직전 바다에 뛰어들어 헤엄치는 생존자들을 구명보트로 인도한 후 자기는 배로 돌아갔다. 일등항해사는 풀리지 않는 구명보트를 풀어 승객들을 구하고 마지막에 자기 구명조끼마저 남에게 벗어주고 타이태닉과 함께 가라앉았다. 기관장·기관사들도 마지막 순간까지 전기를 작동시켜 탈출을 돕다가 전원 배와 최후를 함께했다.
비상시 수백 명의 목숨을 책임져야 하는 여객선 선장과 승무원들이 자기들 책임을 내팽개친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이런 한심한 수준의 직업의식과 사명감·책임감이 세월호에만 국한된 것인가 하는 점을 생각해보게 된다. 선박 침몰 같은 급박한 상황에서 일반인들은 공황(恐慌)에 빠져 판단 능력을 잃게 된다. 선박이든 비행기·철도든, 또는 다수가 이용하는 다른 어떤 공공시설이든 운영 책임을 진 사람들은 만약의 경우에 종사자들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고 이용객들을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 상세한 매뉴얼을 정해놓고 틈틈이 교육·훈련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시설 종사자는 물론 대한민국 보통 사람 중에 소화기 한번 다뤄본 사람이 얼마나 되고 자동 제세동기로 심폐소생술을 훈련해본 사람이 몇 %나 되겠는가. 우리가 여태껏 보이는 성과를 만들어내는 데만 몰두하고 생명·안전을 중시하는 규범들은 그런 성과를 쌓는 데 걸리적거리는 장애물로나 여기고 무시해왔기에 세월호 참사 같은 일을 겪고 있는 것이다. 정부와 기업을 필두로 전 사회적인 반성과 각성이 필요하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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