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시장 개방이 가시화됐다. 정부는 올해 말로 쌀 관세화 유예기간이 종료되자 국회를 상대로 본격적인 의견수렴 절차에 들어갔다. 말이 의견수렴이지 실상은 시장 개방이 초읽기에 들어간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쌀시장 개방은 농민들의 생존권은 물론 식량주권과 직결된 예민한 사안이다. 더구나 피해 농가에 대한 아무런 지원 대책도 없이 시장논리만 앞세운 채 무작정 시장 개방을 밀어붙일 일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공론화에 나선 것은 더 이상 시간을 끌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1994년 세계무역기구(WTO)와 합의한 쌀 관세 유예는 올해 말로 끝난다. 지금껏 우리는 매년 일정 쿼터양을 정해 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하되 지난 20년간 시장 개방을 미뤄왔다. 늦어도 9월까지 개방 여부에 대한 최종 입장을 WTO에 통보하도록 돼 있다. 쌀시장을 개방할지 아니면 기한을 추가로 유예할지를 선택해야 하는 시점이다.
정부는 “관세화 추가 유예는 불가능하다”며 개방을 당연시하는 분위기다. 올 의무수입물량은 전체 소비량의 8.3%에 해당하는 40만9000t이다. 지금도 쌀이 남아도는 마당에 기한을 추가로 유예하려면 이보다 훨씬 많은 물량을 들여와야 하는 부담이 있다. 시장을 개방하되 수입쌀에 고율관세를 매기면 수입쌀이 국내산보다 더 비싸져 농가피해가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다.
하지만 고율관세는 미봉책일 뿐이다. 자유무역협정(FTA) 당사국들이 고율의 쌀 관세를 그냥 놔둘 리 있겠는가. 관세가 단계적으로 낮아지면 쌀 농가는 존립 자체가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쌀은 일반 공산품과 달리 식량주권이 걸린 문제다. 지금도 쌀 소비량이 줄면서 식량자급률이 급락세를 보이고 있다. 장차 우리의 식량안보가 몇몇 곡물 메이저의 농간에 놀아날 것을 생각하면 끔찍하지 않은가.
무엇보다 농가 대책이 걱정이다. 설혹 불가피하게 쌀시장을 개방해야 한다면 피해 농가에 대한 지원대책을 먼저 마련하는 게 기본 아닌가. 하지만 아직까지 정부의 농가 지원대책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가뜩이나 지금도 농촌은 가구당 2700만원의 빚더미에 시달리고 있다. 섣부른 쌀시장 개방이 두고두고 재앙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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