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7일 목요일

경향_[사설]정권 코드 맞추기로 금융 신뢰 회복할 수 있나

금융회사들이 입에 달고 사는 것 중 하나가 신뢰이다. 금융 특성상 소비자 신뢰를 얻지 못하면 존립기반이 무너진다는 이유에서다. 백번 맞는 말이다. 하지만 하는 행동을 보면 금융회사들이 섬기는 게 소비자가 맞는지 의심이 든다. 

보도에 따르면 금융권에 요즘 ‘통일금융’ 바람이 불고 있다고 한다. 국책은행인 수출입은행과 산업은행은 정부의 통일구상을 뒷받침하겠다며 북한개발연구센터와 동북아 경제파트를 신설했다. 홍기택 산은 회장은 “통일 뒤 북한 산업의 구조조정을 주도해야 한다”고 취지를 설명했다고 한다. 민간에서는 우리은행이 5월부터 통일금융통장 등의 상품을 출시한다. 이들 금융사의 최고경영자는 현 정부의 금융 실세 혹은 코드 인사로 발탁된 사람들이다. 잇단 움직임이 ‘통일 대박’을 얘기하는 박근혜 대통령을 의식한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정권 초기 ‘창조금융’에 이은 코드 맞추기 제2탄인 셈이다. 금융권에서는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창조금융을 대체하기 위한 새 코드라는 말도 나오는 모양이다.

금융사의 코드 맞추기는 득보다 실이 많다. 당장 돈과 인력이 쏠리면서 업무가 중복될 수밖에 없다. 실적에 목을 매게 되면 경쟁이 과열되고 이는 시장왜곡으로 이어진다. 이명박 정부 때는 금융 4대 천황으로 불리는 인사들이 녹색금융을 내세우며 기업들에 앞다퉈 대출해줬지만 중복 투자와 경기악화 등이 겹치면서 부실만 늘어나는 결과로 이어졌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조직과 상품이 종국에는 일회성으로 끝난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의 ‘녹색금융’은 정권교체 뒤 흔적도 없이 사라지면서 금융산업 발전에 도움은커녕 금융의 후진성만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정권이 깃발을 들면 무조건 따라가는 상황에서 금융이 바로 설 리 없다. 고객 정보유출, 대출사기, 횡령사고 등 최근 빈발하는 금융사고는 우연이 아니다. 정권의 낙하산으로 내려와 ‘위’만 바라보는 경영진에게 조직원들이 충성심과 윤리의식을 보여줄 것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언어도단이다. 이런 상황에서 징벌체계 강화 등 내부통제책을 쏟아내 봤자 땜질 처방이 될 수밖에 없다. 되풀이 얘기하지만 금융 신뢰의 출발은 지배구조에 대한 근본적 변화에서 시작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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