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사고 생존자들의 입을 통해 당시의 참혹했던 광경이 속속 전해지면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첫 사망자로 기록된 승무원 박지영씨의 사연은 모든 이의 가슴을 숙연하게 한다. 한 생존자는 “3층엔 구명조끼가 없어 4층에 있던 언니(박씨)가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던져주는 모습이 마지막이었다”고 했다. 그는 “언니는 왜 안 입느냐고 물어보니 ‘선원은 맨 마지막이다. 너의 친구들 다 구해주고 난 나중에 나갈게’라고 했다”고 덧붙였다. 다른 탑승객은 “모두가 탈출하는 마지막까지 그는 안내방송을 했다”고 돌아봤다. 홀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대학을 휴학한 채 배에 올랐다니 유족들의 마음이 오죽하겠는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살신성인한 승무원이 어디 박씨뿐이겠는가. 승무원 24명 중 생존자는 20명이다. 사고 당시 방에서 쉬고 있었다는 선장 이모씨는 해경에 구조된 첫 생존자다. 정확한 진상이 규명되기도 전에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이씨를 무작정 탓할 생각은 없다. 당시 상황을 감안하면 그에게 일사불란한 지휘를 기대하는 것도 무리는 있다. 하지만 안전사고 발생 시 선박의 최종 지휘관은 선장이다. 선장은 승객의 안전 여부가 확인되기 전에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배에서 내릴 수 없다는 사실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굳이 법적 책임을 따지기에 앞서 지휘관이 사고 현장을 먼저 빠져나왔다는 사실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2012년 이탈리아 검찰은 유람선 침몰사고 당시 배를 버리고 도망친 선장에게 2697년형을 구형했다. 이 사건은 리더의 역할과 책무를 망각한 채 행동했을 경우 어떤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잘 보여준 교훈적 사례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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