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성형외과의사회가 그제 기자회견을 열어 일부 성형외과의 불법 의료행위와 비도덕적 병원 운영 실태를 폭로했다. 대국민 사과와 더불어 자정에 나설 것도 다짐했다. 지난해 12월 성형수술을 받은 여고생이 뇌사에 빠지는 등 잇단 성형사건·사고로 성형의료 전반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자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자체 조사를 벌인 끝에 취한 행동이다. 성형외과의사회가 폭로한 내용은 그동안 공공연한 비밀로 알려져 있던 것이지만 의료계 내부의 고발 내지 양심선언으로서 평가할 만하다.
성형외과의사회가 밝힌 일부 성형외과의 행태는 의료 윤리와 제도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내용이다. 광고를 통해 ‘유명 의사’를 만들어 환자에게는 그 의사가 수술할 것처럼 상담을 하지만 실상은 수면마취제 투여나 전신마취 후 다른 의사가 수술하는 ‘섀도닥터’ 관행이 그 하나다. 대리수술은 성형외과 전문의가 아닌 의사가 하는 경우도 있으며 이제는 외국인들조차도 알 정도라고 한다. 이렇게 대량의 수면마취제를 투여해 환자를 속이려다 보니 생겨난 것이 ‘의사면허 대여’ 관행이라고 한다. 수면마취제 과용을 숨기려고 고용 의사의 면허를 빌려 다른 병·의원을 연 뒤 그곳에서 사용한 것처럼 서류를 조작하기 위해서다. 병원이 이렇게 임의로 의사면허 사용 등을 할 수 있도록 ‘노예계약’을 체결한 관행도 드러났다.
아무리 성형이 의술이 아니라 상품이 돼 버린 세태라지만 대리수술, 과다마취, 면허대여, 노예계약 등 기업에서도 발붙일 수 없는 관행이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병·의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일종의 범죄조직이 돼 버렸다”는 의사회 관계자의 말이 정곡을 찌른다. 문제는 현행법으로 이를 규제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의사면허 대여는 불법에 해당하지만 대리수술을 처벌할 명문 규정이 없다. 성형외과의사회가 지난해 12월 여고생 뇌사사고를 자체 진상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관련자에 대해 회원 제명·자격정지 등의 징계를 결정한 것도 의사 자격과는 무관하다.
한국은 성형에 관한 한 수술 실력도 인구도 세계 1위의 ‘성형대국’이다. 최근 일어난 성형사건·사고와 이번 성형외과의사회의 폭로는 그 화려한 명성 뒤의 어두운 면을 그로테스크하게 보여주었다. 의료계의 자체 정화 노력과 별도로 정치권은 성형광고 규제라든가 대리수술 처벌 등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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