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에서의 기초 정당공천 폐지가 최종적으로 백지화되면서 여야 정당이 공히 ‘개혁 공천’을 다짐하고 있다. 진즉 기초 공천 폐지 공약을 번복한 새누리당은 대신 상향식 공천 제도 도입을 내걸었다. 지루한 논란 끝에 기초 공천을 결정한 새정치민주연합은 현역 단체장과 지방의원의 상당한 물갈이를 포함한 개혁 공천 실시를 천명했다. 서울시당은 어제 현역 구청장과 시의원 20% 이상 교체 방침을 발표했다. 격렬한 논란 끝에 기초 공천제를 유지하기로 한 마당이기에, 지방자치 본연의 취지를 살리기 위한 ‘공천 개혁’의 필요와 당위성은 여느 때보다 절실하다 할 것이다.
애초 ‘정당정치에 반한다’는 지적에도 불구, 여야가 앞다퉈 기초 공천 폐지를 공약했던 까닭을 돌아봐야 한다. 정당 공천제가 사실상 중앙정치 실력자들과 국회의원들의 사천(私薦)으로 전락되고, 공천장사가 횡행하면서 풀뿌리 민주주의의 밑동부터 타락한 것이 국민적 공분을 산 때문이다. 공천의 원칙은 허울에 그치고, 국회의원들의 사천이 만연했을 때 빚어진 폐해는 심각하다. 우선 공천을 받으러 돈 보따리를 갖다 주는 비리가 득실댈 수밖에 없다. 4년 전 지방선거 때는 공천 비리 등 ‘금품 선거 사범’으로 적발된 사람이 1700여명에 달했다. 기초단체장 공천에서는 ‘7당6락’(7억원이면 공천, 6억원이면 낙천)이 공공연히 운위됐다. 공천을 받으러 갖다 바친 돈을 벌충하기 위해 취임 후에 각종 이권을 탐하다 사법처리된 시장·군수·구청장이 속출했다. 민선 지자체장 5명 중 1명꼴로 중도하차한 게 현실이다. 기초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은 생살여탈권을 쥔 국회의원의 ‘심부름꾼’을 자처하기 마련이다. 국회의원 상가에서 문상객들의 신발을 정리하는 지방의원은 너무도 흔한 풍경이다. 각종 행사에 불려가 국회의원의 수발을 들고 그들의 민원을 처리하는 것이 우선인 상황에서 진정한 주민자치를 기대하는 건 난망한 일이다.
그럼에도 여야 모두 기초 공천을 하기로 했다. 이제는 공천 과정에서 부정과 비리를 차단하고, 국회의원들의 ‘심부름꾼’이 아닌 주민자치의 ‘일꾼’을 뽑는 공천 개혁을 실천해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공천이 다시금 ‘줄 세우기’와 비리 등으로 얼룩진다면 공천 폐지 공약을 번복하면서 ‘지방자치 정상화’ 운운한 것이 결국 기득권을 챙기기 위한 술수의 언어였음을 고백하는 것밖에 안된다. 벌써부터 새누리당은 상향식 공천을 외치면서 특정 후보의 공천을 위해 규칙을 변경하는 꼼수와 편법이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다. 새정치연합도 개혁 공천을 두고 고질적인 계파대립의 양상이 꿈틀댄다. 기초 공천 폐지 공약을 파기한 상황에서, ‘개혁 공천’의 약속마저 헛것으로 귀결된다면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인내는 한계에 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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