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7일 목요일

경향_[사설]세월호와 함께 침몰한 ‘안전 대한민국’

그제와 어제 우리는 침몰한 세월호 옆에 대한민국의 안전 시스템이 함께 침몰하는 모습을 보았다. 사고가 일어난 것부터 운항사의 대응, 구조 과정과 사후 대책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믿기 어렵고 이해할 수 없는 일투성이였다. 웬만한 풍랑에는 요동치지도 않을 길이 146m, 6825t의 거대한 배가 풍랑도 폭풍도 없는 맑은 아침에 갑자기 옆으로 기울어 가라앉은 것부터가 믿기지 않는다. 침수가 시작된 뒤부터 완전 침몰할 때까지 선장을 비롯한 승무원이 취한 조치와 행동은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상황을 오판하고 오보를 날리는가 하면 사고 24시간이 지나도록 탑승 인원조차 정확히 집계하지 못한 당국의 모습에는 할 말을 잃는다. 

경찰은 세월호의 과도한 변침(항해 방향을 바꾸는 것)이 침몰 원인이라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항로를 변경하려고 무리하게 뱃머리를 돌리는 순간 화물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배가 무게 중심을 잃고 기울어져 침몰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세월호 참사 역시 운항 과실, 즉 인재로 귀결되는 것은 소름 돋는 일이다. 대한민국에서 대형 여객선을 탄 사람의 안전은 선장과 항해사가 실수하지 않는 데 달려 있기 때문이다.

사고 발발에서 완전 침몰까지 세월호 운항사가 취한 조치와 행동은 미스터리에 가깝다. 구조 요청 최초 신고자가 “배가 가라앉고 있다”는 학생의 연락을 받은 학부모였던 것부터가 이상하다. 운항사 측은 배가 침몰하고 있는데도 수차례나 “선실에서 움직이지 말고 대기하라”는 안내 방송으로 오히려 승객의 발목을 잡은 것으로 드러났다. 운항사 측의 이런 이상한 조치가 가공스러운 결과로 이어진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배와 승객을 책임져야 할 선장과 승조원들이 먼저 탈출한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사고가 나면 자동적으로 작동해야 할 구명보트조차 46개 가운데 2개밖에 펴지지 않은 것은 또 무슨 연유인가. 세월호의 안전 시스템은 선체가 침몰하기 전에 이미 파탄나 있었던 셈이다.

재난 당국의 대응 시스템은 더더욱 한심했다. 경기도교육청의 ‘학생 전원 구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368명 구조’ 등의 오보로 정부의 위기 대응력에 대한 신뢰를 크게 떨어뜨렸고 중요한 초기 구조 기회를 날려버렸다는 비난을 자초했다. 승객들이 갇힌 상태에서 배가 뒤집히는데 아무 손도 못쓰고 이를 생중계하는 꼴만 됐다. 기본적인 탑승자 수조차 477명, 462명, 475명으로 몇 차례나 정정하는 등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딱할 지경이었다.

세월호 참사로 제주도 수학여행 길에 오른 경기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이 대거 희생된 것은 가슴을 칠 노릇이다. 지난해 고등학생의 해병캠프와 올해 대학생 오리엔테이션 참사에 이어 어린 자녀들조차 지켜주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고장난 안전 시스템을 다시금 확인해준 셈이다. 우리는 자녀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수학여행도 오리엔테이션도 체험캠프도 보내지 말아야 하는 나라에 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실종자 가족들에게 구조에 전력을 다할 것을 약속하고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데 대해 철저한 조사와 원인 규명으로 책임질 사람은 엄벌토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말처럼 사고 원인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책임 소재 규명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간의 여러가지 ‘있을 수 없는 일’들에서도 드러났듯이 모든 사고에는 안전불감증과 인재(人災)가 개입돼 있다. 하지만 거창한 구호와 일시적 관심만으로는 근본적 해결책에 다가갈 수 없다. 정부와 정치권, 사회 각 부문은 세월호 실종자 구조를 위한 노력과 성원을 침몰한 대한민국의 안전을 구조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것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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