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5일 화요일

경향_[사설]박 대통령, 민심 외면하고 남재준 끝까지 감쌀 텐가

“국가정보원은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 국정원은 개혁안을 스스로 마련해주기 바란다.”(지난해 7월8일) “증거자료 위조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수사 결과 문제가 드러나면 반드시 바로잡을 것이다.”(3월10일) “국민께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국정원은 환골탈태 노력을 해야 하고, 다시 국민의 신뢰를 잃는 일이 있다면 반드시 강력하게 책임을 묻겠다.”(4월15일) 

모두가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이다. ‘남재준 국정원’에 대한 박 대통령의 인식은 손톱만큼도 바뀌지 않았다. 국정원의 간첩사건 증거조작이 사실로 드러났는데도 어제 남재준 원장 재신임을 분명히 했다. 전날 밤 ‘대리 경질’한 서천호 2차장 선에서 인책을 끝내겠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9개월 전 언급한 ‘셀프 개혁’을 재차 주문했다. 때맞춰 남 원장은 국정원으로 기자들을 불러들여 3분간 대국민 사과문을 읽었다. “책임을 통감한다”면서도 거취 표명은 없었다. 영혼 없는 ‘사과 퍼포먼스’는 들끓는 분노에 기름을 끼얹고 있다.

근대 법치국가의 형사사법은 증거재판주의를 기반으로 한다. 선진국에서 위증이 최악의 범죄로 일컬어지는 이유다. 더욱이 다른 곳도 아닌 정보기관이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허위 증거를 만들어냈다면, 법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이자 모독이다. 검찰은 이 같은 국기문란 범죄를 ‘3급 직원’이 주도했다는 수사 결과를 내놓았다. 사실로 믿을 사람은 드물 터이나, 설사 사실이라 해도 남 원장이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최소한 직원들이 불법행위를 저지른 데 대한 지휘·감독 책임은 져야 한다. 아니 무능과 태만, 발뺌과 거짓말만으로도 정보기관장으로서 자격상실이다.

박 대통령이 이미 리더십을 잃은 남 원장을 감싸는 까닭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정권의 위기 때마다 구원투수 노릇을 한 데 보은의 뜻이 클 테고, 남다른 충성심을 지렛대 삼아 국정원을 정권의 충직한 하수인으로 남겨두려는 복심도 작용했을 법하다. 하지만 단견이다. 정보기관의 존립기반은 국민의 신뢰다. 국민이 믿지 않는 정보기관은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다. ‘남재준 국정원’은 대선개입 사건 수사에 저항하고, 국가 기밀문서를 무단 공개하더니, 마침내 법원에 제출할 증거를 위조한 사실까지 드러났다. 남 원장이 자리를 지키는 한 국정원이 어떠한 개혁조치를 취한다 해도 국민은 믿으려 들지 않을 터이다. “송구스럽다”는 사과가 진심이라면, 박 대통령은 남 원장을 해임해야 한다. 민심에 귀 닫고 오만과 독선으로 일관하다가는 ‘남재준의 위기’가 ‘박근혜의 위기’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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