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어른들에게 어제는 참으로 부끄럽고 죄스러운 하루였다. 지난해 경북 칠곡과 울산에서 일어난 아동학대 사망사건의 1심 선고공판이 오전과 오후에 각각 열렸다. 법원은 ‘칠곡 사건’의 계모 임모씨에게 징역 10년, ‘울산 사건’의 계모 박모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이들이 아무리 무거운 처벌을 받는다 해도 어린 영혼들은 살아 돌아올 수 없다. 시민의 공분은 당연하나 그것으로 끝나선 안되는 이유다. 이제 아동에 대한 모든 형태의 폭력을 뿌리 뽑기 위해 인식의 대전환이 절실한 때다.
칠곡 사건과 울산 사건의 주범은 계모들이다. 그러나 아동학대 문제를 ‘나쁜 새엄마들’의 문제로 환원하는 일은 온당하지 않다. 칠곡 사건 당시 계모는 8살 된 의붓딸을 폭행해 숨지게 한 뒤 12살 난 피해자의 언니에게 허위 자백을 강요하고 죄를 뒤집어씌웠다. 끔찍하고 잔혹한 범죄행위의 뒤편에는 공범들이 있었다. 친아버지는 계모의 학대를 방치했고, 학교와 아동보호기관은 무기력했다. 아이는 이 세상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폭력에 시달리다 목숨을 잃었다. 아이가 사망한 뒤 검찰과 경찰의 수사 역시 부실투성이였다. 12살 소녀가 어린 동생을 죽였다는, 일반인도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을 받아들였다. 결국 법정에서 진실이 드러나기는 했으나 피해자의 언니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게 됐다. 사회적 시스템은 온통 고장나 있었다.
한국의 아동학대는 심각한 상황이다. 2009년 9309건이던 신고 건수는 해마다 증가해 지난해 1만3706건에 이르렀다. 전문가들은 실제 사례가 신고 건수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한다. 사태의 중대성을 인식한 국회와 정부도 지난해 울산 사건 이후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오는 9월부터 시행되는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은 형량을 무기징역까지 높이고 학대한 부모의 친권을 박탈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최근에는 아동에게 심각한 위해를 가하는 부모에게 최대 4년까지 친권을 정지하는 내용의 민법 개정안도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법과 제도는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이를 작동케 하는 것은 사람이다.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법과 제도는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모든 어른들은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 아이는 존중받아야 할 독립적 인격체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체벌은 폭력일 뿐 교육이 아니다. 무엇보다, 아동학대는 물론 아동학대를 방관하는 일도 중범죄임을 깨달아야 한다. 칠곡과 울산의 죽음이 ‘사회적 살인’임을 잊지 않을 때 희망의 단서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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